11일 현지시각 뉴욕증시 3대 주요 지수가 일제히 상승 마감했다. 중동 지역 지정학적 긴장감이 다시 커지고 국제 유가가 올랐지만 인공지능 관련 기술주가 강세를 보이면서 지수 하락을 막았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우량주 중심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95.31포인트 상승한 4만9704.47에 거래를 마쳤다. 다우지수는 0.19% 올랐다. 대형주를 모아놓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 지수는 0.19% 상승한 7412.84로 마감했다. 사상 처음으로 7400선을 돌파하며 종가 기준 역대 최고치를 다시 썼다. 기술주 비중이 높은 나스닥종합지수 역시 0.1% 오른 2만6274.13에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뉴욕증권거래소. /연합뉴스

투자자들은 이날 미국과 이란 사이 군사적 갈등 상황에 주목했다. 이란은 전쟁을 끝내고 자국에 내려진 경제 제재를 해제하자는 새로운 협상안을 미국 정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보낸 제안을 완전히 수용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을 만나 양국 간 휴전 상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이란은 최근 한 달 동안 전면전을 자제한 채 휴전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협상안을 거부하면서 중동 지역에 다시 전면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울프 리서치 소속 애널리스트 마커스는 "이란이 보유한 농축 우라늄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중동 불안은 곧바로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이날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 선물은 2.78% 오른 배럴당 98.0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원유 가격 기준점 역할을 하는 브렌트유 선물은 2.88% 뛴 배럴당 104.20달러를 기록했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물가 인상에 대한 불안감은 미국 국채 금리를 끌어올렸다. 시장 금리 기준점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0.05%포인트 상승한 4.41%를 기록했다. 금리가 올랐다는 것은 국채 수요가 줄고 가격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월가 대형 은행들은 고용과 물가 지표를 고려할 때 연방준비제도가 올해 연말까지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며 금리 인하 예상 시기를 미뤘다. 이번 주 발표 예정인 4월 소비자물가지수 역시 전달 대비 0.6% 상승할 것으로 경제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거시 경제에는 악재가 겹쳤지만 기술주는 상승세를 유지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6.5% 급등했고 인공지능 대장주로 꼽히는 엔비디아는 2% 가까이 상승했다. 인프라스트럭처 캐피털 어드바이저스 최고경영자 제이 햇필드는 "기술주 붐이 너무 강력해서 고유가가 미국 경제나 증시에 미치는 영향을 상쇄하고 있다"며 "시장 참여자들이 중동 상황에 관심을 끄고 있다"고 덧붙였다.

씨티그룹 전략가 스콧 크로너트 역시 인공지능 붐 혜택을 직접 받는 기업들이 모인 나스닥 100 지수를 가장 선호하는 투자처로 꼽았다. 그는 기술주 가치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지만 예상되는 이익 성장세를 고려하면 과대평가 된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기업 실적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도 지수를 밀어 올렸다. 야데니 리서치 사장 에드 야데니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 지수 연말 목표치를 기존 7700에서 8250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반면 물가 영향에 따라 실적 차이가 큰 소매업체와 소비재 관련 주식은 크게 부진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소매업 상장지수펀드는 하루 동안 3% 이상 떨어졌다. 유명 신발 브랜드 칼레레스와 백화점 체인 콜스는 나란히 9% 넘게 급락했다. 금융기관 로스 소속 전략가 제이씨 오하라는 소비재 주식이 포트폴리오 전체 수익률을 깎아내리는 요인으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패스트푸드 체인 웬디스 주가는 제이피모건이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웬디스 미국 매장 매출은 올 1분기에 7% 가까이 감소했다.

넷플릭스 주가는 텍사스주 검찰이 제기한 소송 소식에 2% 이상 하락했다. 텍사스주 켄 팩스턴 법무장관은 넷플릭스가 소비자 동의 없이 민감한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고 상업용 데이터 중개업체에 판매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육류 가공업체 타이슨 푸드 주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소고기 수입 관세를 일시적으로 낮출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뒤 장중 4% 넘게 떨어졌다가 낙폭을 일부 회복했다. 저렴한 수입 소고기가 들어오면 미국 내 업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바이오 기업 모더나는 미국인 한 명이 한타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에 주가가 한때 9% 가까이 치솟았다. 한타바이러스는 쥐와 같은 설치류를 통해 전파되는 치명적인 호흡기 질환이다. 모더나가 지난주 한타바이러스 백신 초기 개발 단계에 진입했다고 발표한 점이 투자자들 기대감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