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공습 여파가 바다를 건너 일본 소비재 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다. 설비를 돌릴 중유(重油)가 없어 일본 유명 과자 생산 라인이 멈춰 서고, 소셜 미디어에는 화장지가 품귀 현상을 빚을 거라는 소문이 퍼지며 시민들 불안을 자극했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 핵심 통로 역할을 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로 닥치자, 에너지 수급 불안 심리가 일본 실물 경제 위기로 급격히 번지는 양상이다.

이란 사태로 생산이 중단된 일본 과자 제조업체 야마요시제과의 대표 제품 '와사비프' 감자칩. /야마요시제과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후, 그 나비효과는 2주도 지나지 않아 일본에 나타났다. 효고현 아사고시에 본사를 둔 중견 제과업체 산포세이카(야마요시제과)는 공습 13일 차였던 지난 12일부터 간판 상품 와사비프를 포함해 시오비프, 명란마요비프 같은 주력 감자칩 생산을 중단했다.

감자를 튀기려면 식용유 가열을 위해 대형 보일러를 가동해야 하는데, 이 보일러 가동에 쓰이는 중유 조달 경로가 완전히 막힌 탓이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이 공장에서는 일주일에 2만8000리터에서 최대 3만 리터에 달하는 중유를 소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동 사태 악화로 공급처에서 연료를 확보할 방법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감자칩 시장 경쟁업체 가루비(Calbee)와 고이케야는 상대적으로 기업 규모가 크고, 제조 공정과 설비 가동에 중유를 직접 사용하지 않아 당장 급한 불은 피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사태가 장기화되면 포장재 가격 상승 같은 파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포장재로 주로 쓰이는 플라스틱이나 합성섬유는 원유를 정제해 만드는 기초 화학 원료 나프타로 만든다. 나프타는 가솔린이나 경유와 달리 국가별 장기 비축 물량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공급이 끊기면 필수 소비재 생산 라인 가동을 즉각적으로 위협한다.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에 위치한 다이오제지 공장에서 한 직원이 작업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명 감자칩 공장이 중유가 부족해 가동을 멈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안정성을 커졌다. 불안 심리는 생필품 사재기로 번졌다. 최근 엑스(X) 등 일본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원유 가격 폭등으로 화장지 공급이 끊길 수 있다는 괴담이 삽시간에 퍼졌다.

화장지는 나무로 만들지만, 생산·가공·포장·유통 전 과정에서 원유가 핵심 역할을 한다. 펄프를 삶고(증해) 건조·압착하는 전 과정에 막대한 에너지가 투입된다. 표백제·유연제·습윤강도제 등 주요 첨가제는 상당 부분 석유화학 제품이다. 여기에 묶음 포장에 쓰이는 폴리에틸렌(PE) 등 플라스틱 소재까지 원유 기반인 만큼, 생산 단계 전반이 유가 변동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다. 특히 화장지는 부피가 크고 단가가 낮은 전형적인 저부가·대량 소비재이다. 운송비 비중이 높기 때문에 지금처럼 유가가 급격히 오르면 물류비 부담이 곧바로 소비자 가격에 전가된다.

과거 동일본대지진과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국민적인 생필품 물량 부족 트라우마를 겪었던 일본인들은 화장지 사재기에 나서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근거 없는 가짜 뉴스까지 겹쳐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가중하자, 일본 경제산업성은 19일 이례적으로 정부 공식 성명을 내고 여론 진화에 나섰다.

경제산업성은 이날 일본가정지공업회 공식 발표를 인용해 "화장지 원료는 국내에서 회수한 고지와 펄프를 주로 사용하며 중동 지역 수입 물량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시중 재고 물량이 충분하고 공장 생산 능력에 여력이 충분하다"며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냉정한 판단을 해 달라"고 했다.

16일 일본 도쿄의 한 주유소를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은 원유 전체 물량 가운데 약 93%를 중동 지역에서 들여온다. 이 막대한 물량 거의 전부가 분쟁 지역인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야 한다. 현재 일본 정부는 254일분(약 8개월 치)에 달하는 국가 및 민간 석유 비축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장 대규모 전력 마비나 교통 대란 사태를 피할 여력은 갖춘 상태다. 하지만 지금처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수입이 계속 정체되면 사태는 감자칩 생산 중단이나 화장지 품귀 소동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나프타를 포함한 원유 정제 소재가 두루 쓰이는 자동차 부품 공장 가동이 중단되거나, 일선 병원에 의료 기기 수급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비슷한 지정학적 위치에 놓인 한국은 당장 느껴지는 파장이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한국석유공사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한국 중동 원유 의존도는 약 69% 수준이다. 과거 80%를 훌쩍 웃돌던 중동 의존도를 미국산 셰일오일을 비롯한 다양한 지역 원유 수입으로 크게 낮췄다. 다만 해상 물류 마비 사태가 예상보다 길어지면 한국 경제 역시 수급 불안과 유가 급등에 따른 전방위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