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대 기숙사에서 구글을 시작해 실리콘밸리 전성기를 이끈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캘리포니아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수십 년간 이 지역을 키우고, 그 자리를 지켜온 상징적 인물들이 등을 돌린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직접적 계기는 '억만장자세(Wealth Tax)' 도입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세금은 미국 최고 수준으로 내는데, 돌아오는 공공 서비스는 형편없다'는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이제 집값도 세금도 '비싼 만큼 좋은 주'가 아니라 '비싼데 불안한 주'로 전락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2일(현지시각) 폭스비즈니스와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브린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직전 캘리포니아에 있던 유한책임회사(LLC) 15곳을 폐쇄하거나, 다른 주로 옮겼다. 15곳 가운데 7곳은 캘리포니아와 맞닿은 네바다주로 거점을 이전했다. 이 중에는 브린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슈퍼요트와 전용기 터미널 지분을 관리하는 업체도 포함됐다. 브린과 구글을 함께 창업한 래리 페이지 역시 이달 초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7190만 달러(약 1050억 원) 상당 저택을 구입하며 캘리포니아와 거리를 뒀다.
브린과 페이지를 포함한 내로라하는 캘리포니아 부호들은 주 차원에서 추진하는 억만장자세 주민발의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억만장자세는 아직 시행된 세금은 아니다. 보건의료노조가 주도한 주민발의안이다. 주 정부는 순자산 10억달러 이상 거주자에게 자산 5%를 일회성 세금으로 부과해 약 1000억 달러(약 146조 원)에 달하는 세수를 확보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법안은 올해 11월 주민투표를 거쳐, 과반 이상 동의를 얻을 경우 올해 1월 1일 기준 캘리포니아 거주자였던 고액 자산가 모두에게 부과된다. 부과 대상은 브린과 페이지를 포함해 약 200명 정도다. 이 때문에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통과 여부와 무관하게 기준일을 넘기면 과세 위험이 생긴다'는 인식이 퍼졌다.
자산 평가 방식도 논란을 빚었다. 아직 법이 통과된 것은 아니지만, 이 법안은 소득 뿐 아니라 주식, 미실현 이익, 지적재산권처럼 돈이 될 만한 자산 전체를 과세 대상으로 삼는다. 미국에서는 재산세나 유산세처럼 특정 자산 가운데 일부를 떼가는 세금 형태가 일반적이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발의안처럼 개인 순자산 전체를 뭉뚱그려 5%를 별도로 걷어가는 주(州) 차원 '순자산세'는 전례가 없다. 고액 자산가들도 세율보다 제도 선례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큰 우려로 작용하고 있다. 부당한 전례가 만들어지면 언제든 추가 증세가 뒤따를 수 있다는 공포가 이들을 탈출로 내몰았다는 평가다.
불만은 단순히 세금 액수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고액 자산가들과 기업들은 '조세와 성과 불일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캘리포니아 주 소득세 최고세율은 13.3%로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높다. 주 소득세가 아예 없는 텍사스·플로리다(0%)와 비교하면 동일한 고소득자 기준으로 연간 수백만 달러 세 부담 차이가 발생한다. 캘리포니아 다음으로 세율이 높은 하와이(11.0%)나 뉴욕주(10.9%, 뉴욕시 별도 세금 제외)와 비교해도 2~3%포인트 이상 높다.
그럼에도 공공 서비스에 대한 체감 평가는 바닥을 친다. 특히 치안 악화는 부자들에게 상징적 불만이 됐다. 미국 전체 노숙인 가운데 약 30%는 캘리포니아 주에 머무른다.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차량 절도, 매장 약탈, 노상 범죄 발생률은 모두 전국 평균을 웃돈다. 과거 '안전 지대'로 통했던 고급 주거지에서도 범죄 노출이 이어지고 있다. 베벌리힐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도 주거침입·절도·차량 절도 사건이 꾸준히 집계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고급 상권인 유니언스퀘어 일대에서는 대형 백화점마저 절도 우려에 운영 방식을 예약제로 바꿨다.
반면 주 소득세를 전혀 걷지 않는 텍사스와 플로리다는 치안·도시 관리 지표에서 중위권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기업과 부호들은 '세금은 최고치로 내면서, 안전은 사설 경비를 따로 고용해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구조가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직원 가족에게 거주지로 추천하기조차 어려운 환경이 됐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다른 주보다 세금을 더 내는 행위 자체보다, 그 막대한 돈이 어디에 쓰이며 어떤 결과를 내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핵심이다.
캘리포니아는 여전히 다른 지역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매력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 독보적인 인재 풀과 성숙한 혁신 생태계, 온화한 기후와 여유로운 생활 방식은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다.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대표적인 캘리포니아 잔류파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우리는 실리콘밸리에 살기로 선택했고, 어떤 세금이 적용되든 따를 것"이라며 주 정부 정책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젠슨 황 같은 사례는 소수다. 대다수 고액 자산가들은 캘리포니아가 가진 장점이 세금 부담과 생활 불안을 상쇄할 만큼 강력한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벤처 투자자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캘리포니아에서 이미 1조 달러(약 1460조 원) 규모 자산이 빠져나갔다"며 "이대로라면 중산층이 그 세금 계산서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동산 거물 존 소브라토 역시 "캘리포니아는 세금 정책 실패로 이미 많은 인재와 자본을 잃고 있다"며 정책 수정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