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계속되는 실적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대규모 감원에 나섰다. 팬데믹 시기 폭발적인 성장을 구가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엔데믹 이후 소비자 인식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스포츠 제왕'이라는 명성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이번 감원은 끊임없는 혁신의 상징이었던 나이키가 어쩌다 위기에 봉착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나이키는 28일(현지시각) 전체 직원 약 7만7800명(2025년 5월 31일 기준) 가운데 1% 미만에 해당하는 인력을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2월 전체 인력의 2%에 달하는 1600여 명을 해고한 지 불과 1년 반 만에 나온 추가 구조조정 계획이다. 잇따른 감원 소식은 나이키에 닥친 위기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나이키는 이번 구조조정이 지난해 9월 구원투수로 임명한 엘리엇 힐 최고경영자(CEO) 주도 아래 이뤄지는 대대적인 사업 재편의 일환이라고 했다. 힐 CEO는 조직을 스포츠 종목별로 재정비해 나이키 본연의 정체성인 '스포츠'와 '선수'에 다시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나이키 경영진은 내부 구성원에게 보낸 메모에서 "우리가 단행하는 변화는 나이키의 위대한 다음 장을 열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이번 감원 의미를 설명했다.
지난해 나이키 주가는 일년 동안 32% 폭락했다. 이번 회계연도 4분기(3~5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줄었다. 본거지인 북미는 물론 유럽 · 중동 · 아프리카(EMEA), 핵심 시장이었던 중국에서 모두 매출이 동반 하락했다. 특히 각별히 공을 들였던 중국에선 분기 매출이 17% 줄었을 뿐 아니라, 지난 일년 동안 330개가 넘는 매장을 닫았다. 이 결과 올해 연매출은 지난해보다 10% 줄어든 463억달러(약 64조원) 수준으로 예측된다. TD 코웬 존 커난 애널리스트는 로이터에 "나이키가 혁신에 실패하면서 브랜드 매력도가 크게 떨어졌다"고 했다.
실적 부진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전문가들은 특히 '정치적 올바름(PC)'에 과도하게 경도된 마케팅 전략을 가장 큰 패착으로 꼽았다. 2023년 4월, 나이키는 100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레이니를 여성용 스포츠브라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이 광고 게시물에는 그가 요가 자세를 취하며 "부드럽고 편안하다"고 홍보한 장면이 담겼다.이 결정은 해당 제품 핵심 지지층이었던 여성 운동선수와 보수층 소비자를 중심으로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포용을 넘어 혼란을 낳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면서 불매 운동까지 벌어졌다. 나이키가 추구하던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가치가 도리어 브랜드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논쟁을 촉발한 대표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나이키는 기존 충성 소비자와 충돌했을 뿐 아니라 같은 시기 새 소비자층을 유인하는 데도 실패했다. 모두를 위한 브랜드였던 나이키가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지 알 수 없게 됐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전임 CEO였던 존 도나호는 나이키사업 부문을 여성, 남성, 아동으로 재편해, 스포츠 브랜드에서 벗어나 라이프스타일(일상생활) 브랜드로 자리잡길 원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운동선수를 위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나이키 핵심 철학을 희석시켰다. 소재와 디자인 부문에서 혁신 동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략적 판단 착오도 위기를 심화시켰다. 나이키는 2020년 팬데믹이 닥치자 유통업체를 건너뛰고 홈페이지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D2C(Direct-to-Consumer)' 전략을 공격적으로 펼쳤다. 그 결과 오랜 파트너였던 풋락커·JD스포츠 같은 도매 유통망과 관계가 악화했다. 판매 채널이 급격히 위축되자 이는 막대한 재고 부담으로 이어졌다. 쌓인 재고는 정상가가 아닌 할인가에 팔려갔고, 이윤과 브랜드 이미지는 동시에 무너졌다. 나이키는 결국 백기를 들고 이제야 유통업체들과 관계 회복에 나서며 전략적 혼선을 빚고 있다.
나이키가 방향을 잃고 헤매는 동안 시장 판도는 급변했다. 호카(Hoka)와 스위스 태생 온러닝(On Running)은 무섭게 성장하며 나이키 아성을 위협했다. 이들 브랜드는 독보적인 쿠셔닝 기술과 차별화한 디자인을 무기로 MZ세대를 사로잡았다. 소비자들은 나이키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과 기능성에 지갑을 열었다. 온러닝은 올해 2분기 매출 7억4920만 스위스프랑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급성장했다. 호카 역시 이번 회계연도 1분기 매출 6억5310만달러로 전년보다 11% 성장했다. 이는 호카 기준 사상 최대 분기 매출이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나이키는 올해 초 '지금 승리하라(Win Now)'는 구호를 내걸고 대대적인 쇄신을 선언했다. 에어조던 같은 핵심 브랜드를 재정비해 떨어진 브랜드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시장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에어 조던 1, 에어 포스 1, 덩크 로우 같은 과거 히트작에 여전히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며 '혁신이 멈췄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힐 CEO는 "스포츠에 미친 팀(sport-obsessed teams)을 꾸려 혁신적인 제품을 끊임없이 쏟아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기존 여성·남성·아동으로 나뉜 사업부를 해체하고, 다시 스포츠와 문화를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 감원 역시 그 과정에서 나온 조치다.
포브스는 소매 분석가 제시카 라미레즈를 인용해 "나이키가 여전히 거대하고 강력한 브랜드지만 시장은 변했고, 더 이상 과거의 성공에 안주할 수 없다"며 "젊은 소비자들이 호카나 온러닝 같은 새로운 브랜드가 주는 신선함에 매력을 느끼고 있고, 이들 마음을 되찾으려면 나이키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