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안신융펑기금관리유한공사는 중소형 자산운용사여도 경쟁력은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중국 여성 펀드매니저 중 최고 스타인 판옌 부총경리 점 최고투자책임자(CIO) 덕분이었다. 운용하는 펀드마다 고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이익 내는 여장군’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인물이다. 위안신융펑에서 10년간 근무한 판옌에게 회사는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펀드의 44%인 170억900만위안(약 3조2300억원)어치를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판옌은 지난 4월 돌연 사직했고, 최근에서야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웰스파고로 이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공모펀드 성장이 둔화하면서 펀드매니저들이 줄줄이 이탈하고 있다. 중국 증시 빙하기가 장기화하면서 이들이 받는 수익 압박이 거세진 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공동부유’ 기조 탓에 고액 연봉마저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베테랑 펀드매니저들은 실적에서 자유로운 연구직 또는 중국 정부의 입김이 닿지 않는 외국계 자산운용사로 이직하고 있고, 이들의 빈 자리는 경력이 짧은 신입 펀드매니저들이 채우고 있다. 중국 펀드 운용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금융투자업계가 밀집해 있는 베이징 CBD. /EPA 연합뉴스

29일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과 홍성신문 등은 시장조사업체 윈드의 데이터를 인용해 올해 들어 지난 28일까지 총 113개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204명이 퇴사했다고 전했다. 지난 9년래 같은 기간 중 최다치다. 특히 7월 한 달 동안에만 40명 가까이 떠나면서 이탈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펀드매니저가 바뀐 상품도 2594개를 기록했다. 다만 전체 펀드매니저는 3797명으로 이전과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퇴사한 이들보다 많은 257명이 새로 유입되면서다.

중국 펀드매니저들이 떠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는 실적 압박이 꼽힌다. 중국 증시는 연초부터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5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고, 지금까지도 크게 회복하지 못했다. 이에 공모펀드도 재미를 못 보는 상황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 조정의 맥락에서 펀드 연구 및 평가에 대한 요구사항이 엄격해졌고, 펀드매니저들도 성과 압박을 받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펀드매니저의 사임 및 이직은 빈번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제일재경에 전했다. 중국 증권투자펀드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공모펀드 자산 총액은 31조800억위안(약 5914조2100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12% 성장했지만, 3년 전 같은 기간 36% 늘어난 데 비하면 3분의 1토막 난 것이다.

여기에 연봉이 줄줄이 깎여나가는 것도 이들의 퇴사 욕구를 부추겼다. 중국 투자업계의 영업·투자 담당 임원과 부서장은 기본 급여만 연간 160만~600만위안(약 3억~11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공동부유’ 기조가 강화하면서 중국 규제 당국이 투자업계의 급여 상한선을 설정했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3일 중국 대형 투자사인 자오샹기금관리공사와 보스기금이 올해 펀드매니저의 연봉 상한선을 각각 300만위안과 290만위안으로 설정했다고 전했다. 이들 회사는 지난해 이보다 많이 받은 펀드매니저에게 초과분 반납을 요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실적을 내기 어려운 환경에서 실적을 요구받고, 연봉까지 떨어지자 이들이 선택한 곳은 먼저 같은 회사 또는 업계 내 연구직이다. 이전까지 펀드매니저를 하다 연구직으로 옮긴 이들은 성과 평가에서 탈락한 이들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 들어서는 연구직 이동을 선호하는 펀드매니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웰스파고로 옮긴 판옌처럼 외국계로 이직하는 것도 선택지다. 이들 회사는 투자 제한, 연봉 상한 등 중국 정부 입김에서 보다 자유롭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들의 대규모 이탈은 결국 공모펀드의 신뢰도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전체 펀드매니저 3797명 중 경력이 3년 미만인 이들은 40%에 달한다. 중국 매체 스제는 “찰리 멍거(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는 한때 40세 미만의 투자 담당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라며 “투자는 재능에만 의존할 수 없다. 투자를 이해하고 지식과 행동을 결합하려면 수년간의 실제 투자 경험을 통해 상승장과 하락장을 여러 번 겪어야 한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