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아르노(75)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은 매주 토요일 아침, 다섯 자녀와 경호원 등을 거느리고 크리스찬 디올, 불가리, 셀린느, 펜디, 루이비통 등 LVMH 소유의 매장을 몇 시간 동안 둘러본다. 자신이 만든 ‘명품 제국’의 분위기를 깨뜨릴 수 있는 요소가 있는지 찾아보기 위한 일정이다. 이후 아르노 회장은 자신의 눈에 들어온 부분을 메모해 LVMH 고위 임원들에게 문자와 메일로 보낸다.

셋째 아들인 알렉상드르 아르노(32) 티파니앤코 제품 및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사장은 블룸버그가 27일(현지 시각) 보도한 ‘아르노 가문’(The HOUSE of ARNAULT)이라는 기사에서 아르노 회장이 최근 두바이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알렉상드르 부사장은 “아버지는 매장의 의자와 판매원들이 신은 신발에 대해 매우 자세한 이야기를 한다”며 “판매원들이 나이키 신발을 신고 있었던 점을 지적했다”고 회상했다. 나이키 중에서도 티파니와 합작해 제작해 400달러에 판매된 에어포스1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르노 회장은 “LVMH 판매원은 LVMH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알렉상드르는 설명했다. 알렉상드르는 “아버지는 보통 사람은 눈치채지 못할 것들이지만, 수년에 걸쳐 수만 개의 매장을 보면 바로 떠오르는 것들을 본다”고 했다.

베르나르 아르노(75)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 / AFP 연합뉴스

장남인 앙투안 아르노(47) LVMH 커뮤니케이션 및 이미지 책임자 역시 아르노 회장이 지난 4월 일본 도쿄의 벨루티 매장을 찾았을 때를 떠올렸다. 앙투안은 “아버지는 12년 전 건축가과 함께 만들었던 첫 번째 콘셉트를 좋아했다”며 “아버지는 저에게 ‘그 매장에 있던 녹청색 바 기억나니, 여기에 둬 봐’라고 했다”고 했다.

◇ “경외감과 두려움의 대상, 아르노 회장 등장만으로 회의실 온도 떨어져”

아르노 회장은 LVMH 본사 사무실 회의실에서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블룸버그는 “아르노 회장은 디올 남색 블레이저, 검은색 터틀넥, 어두운 슬랙스와 벨루티 단화를 완벽하게 차려입고 은색 루이비통 시계를 차고 있었다”며 “벽에는 앤디 워홀의 그림 세 점이 걸려 있었고, 액자에 담긴 피카소가 구석에서 매달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묘사했다.

아르노 회장은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8시 30분에 퇴근한다. 아르노 회장은 사업적인 야망 때문이 아니라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즐겁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르노 회장의 직원들은 ‘재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아르노 회장이 하루 종일 직원들에게 너무 많은 이메일을 보내기 때문에 직원들은 대응 방법을 공유할 정도다.

베르나르 아르노(75)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과 그의 장녀인 델핀 아르노(49) 크리스찬디올 CEO. / AP 연합뉴스

블룸버그는 “LVMH에서 오래 일한 직원, 전직 직원은 아르노 회장에게 경외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한 사람은 “아르노 회장이 회의실에 들어오면 온도가 약 8도 떨어진다”고 했다. 또 다른 직원은 “아르노 회장은 안주하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며 “매출이 강력하다고 말하는 것은 회의를 시작하는 최악의 방법이다. 그렇게 말하면 죽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아르노 회장은 지난 4월 연례 주주총회에 “제가 좀 덜 따뜻한 거 같아요”라고 했다.

◇ 다섯 자녀 조언 받아들여 파리 올림픽 후원 결정

27일 기준, 아르노 회장의 자산은 1850억 달러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2200억 달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2170억 달러)에 이어 세계 3위 부자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4위, 1850억달러),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5위, 1640억 달러),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6위, 1570억 달러) 등 전 세계 부호 대부분은 소프트웨어, 클라우드컴퓨팅과 같은 IT 서비스, 전기자동차 등으로 부를 축적했다. 이를 반영하면 아르노 회장이 걸어온 길은 일반적인 세계 부호와 다르다.

여기다 아르노 회장이 만든 ‘명품 제국’은 사치품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것이 아르노 회장이 7월에 열릴 파리 올림픽을 후원하기로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다. 아르노 회장은 “LVMH는 프랑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이라며 “해외에 갈 때마다 마치 대사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LVMH는 파리 올림픽 메달은 물론 프랑스 선수들의 개막식 옷을 디자인했다. 앙투안은 “아버지가 처음에는 올림픽을 후원하길 꺼렸다”고 했다. 하지만 아르노 회장은 다섯 자녀에게 LVMH가 어떤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지 묻고 있으며 그 결과 파리 올림픽의 공식 후원사가 됐다.

파리 올림픽을 기간 아르노 회장이 만든 명품 제국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게 될 예정이다. 파리를 방문하는 이들은 패션, 주얼리, 핸드백, 샴페인, 증류주, 고급 호텔을 망라하는 LVMH 제국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르노 회장이 소유한 75개의 고급 주택을 파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기다 LVMH 광고판은 파리 시내 곳곳에 있고 아르노 회장이 후원하는 박물관도 파리에 그득하다. 2019년 화재로 인해 소실된 노트르담 대성당은 아르노 회장이 2억 유로를 기부한 덕분에 올해 말 재개관할 예정이다.

◇ 아르노 회장 “매주 토요일마다 매장 방문할 계획”, 당분간 승계 없을 듯

시장에선 LVMH의 승계 계획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르노 회장은 현재 은퇴할 계획이 없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알렉상드르는 “아버지가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언제든지 전화한다”면서 “아버지가 일을 그만둘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오랫동안 LVMH에서 일한 시드니 톨레다노는 “(아르노 회장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 것이)돈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아르노 회장은 무언가를 만들었고, 이를 전달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는 “아르노 회장에게 다음 단계는 가족과 새로운 임원을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려 LVMH가 계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픽=손민균

아르노 회장에게는 두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자녀가 있다.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맏딸 델핀 아르노(49)는 크리스찬디올 CEO다. 델핀의 유일한 동복 남매이자 장남인 앙투안(47)은 LVMH의 광고와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그룹 이사회 부회장 겸 벨루티와 로로피아나의 CEO를 맡고 있다. 아르노 회장의 둘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세 명의 아들 역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영 일선에 참여했다. 셋째 아들인 알렉상드르 아르노(32)는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수석 부사장이다. 넷째 아들은 프레데릭 아르노(29)는 명품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의 CEO, 막내 장 아르노(26)는 루이비통 시계 사업부의 제품 개발과 마케팅 디렉터로 일한다.

블룸버그는 “아르노 회장은 상냥하면서도 악센트가 강한 영어로 승계 이야기를 스스로 꺼냈다”며 “아르노 회장은 ‘제 가족 중 다섯 명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 중 한 명이 승계를 할 능력이 있는지 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르노 회장은 “매주 토요일마다 매장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아르노 회장은 지난해 1월 LVMH CEO의 정년을 75세에서 80세로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워런 버핏(94)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아르노 회장에게 “새로운 연령 제한을 너무 낮게 설정한 것은 실수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일화가 있다.

LVMH는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모엣샹동(Moet & Chandon), 헤네시(Hennessy)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모에헤네시는 1971년 샴페인으로 유명한 모엣샹동과 코냑으로 유명한 헤네시가 합병돼 설립된 회사다. 아르노 회장은 1987년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를 한곳으로 모아 사업화하는 방안을 구상했고, 루이비통과 모에헤네시를 합병하면서 LVMH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