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하겠다고 밝힌 이후 프랑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경쟁자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가운데, 르펜이 승리할 경우 프랑스의 국가부채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각) TV 연설에서 의회를 해산하고 오는 30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AFP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지수는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발표한 이후 5거래일 동안 6% 이상 급락했다. 10년 만기 프랑스 국채 수익률(금리)도 의회 해산 이후 이틀 연속 20bp(1bp=0.01%P) 넘게 추락하며 독일 국채와의 스프레드(차이)가 2020년 3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벌어졌다. 유럽 최고의 안전 국채로 평가되는 독일 국채와 금리 차이가 심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프랑스 국채가 불안정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프랑스 국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은행들도 줄줄이 급락했다. 크레디트 아그리콜과 소시에테 제네랄은 지난 5일 동안 각각 8%, 10%씩 하락했다. BNP파리바도 4% 넘게 떨어졌다.

마크롱 대통령이 27년 만에 처음으로 의회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펜의 극우 국민연합(RN)이 승리할 것이라는 가능성은 높게 점쳐지고 있다. RN은 대규모 지출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어 RN이 승리할 경우 프랑스 재정 적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RN의 경제 정책에는 10만 유로의 무이자 대출, 부가가치세 완화, 연금 개혁 등이 포함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재정 고갈을 이유로 연금을 지급받는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변경했었는데, RN은 오히려 연령을 60세로 낮추자고 제안한 바 있다.

브루노 르 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르펜의 RN이 과거 지지했던 정책은 수천억 유로의 비용이 들 것”이라며 “르펜의 정당이 승리할 경우 프랑스가 부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르 메르 장관은 “극우 정당의 승리는 영국이 리즈 트러스 전 총리 시절 겪었던 혼란과 유사한 상황을 프랑스에서 재현할 수 있다”라고 했다.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는 지난 2022년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다. 이후 대출 금리가 급등하고 파운드화가 폭락하면서 금융 위기론이 커지자, 그는 44일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프랑스 경제방송 BFM비즈니스는 몽테뉴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해 RN의 조치로 프랑스 재정적자가 1000억 유로(148조원)까지 폭증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JP모건자산운용이 최근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모를 통해 “이번 사건으로 프랑스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강화했다”면서 선거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 현재 시장 수준에서 포지셔닝을 구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바클레이스도 유럽 주식에 대한 ‘비중 축소’ 의견을 제시하며 “프랑스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당분간 이 지역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잇달아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무디스는 “잠재적 정치 불안정은 차기 정부가 물려받을 힘든 재정 상황을 고려할 때 신용 위험 요인”이라며 “프랑스의 부채 지표가 추가 악화하면 현재 ‘안정적’인 등급 전망은 ‘부정적’으로 낮춰질 수 있다”고 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비슷한 이유로 프랑스의 등급을 ‘AA’에서 ‘AA-’로 낮췄다.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하겠다고 밝힌 것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3억7000만명 유권자가 한 표를 행사하는 유럽 의회 선거에서 자신의 소속당이 참패한 직후다. 프랑스에서 의회 해산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의회와 정부 간의 갈등으로 정책 추진이 불가할 때나 대통령이 특정한 정치적 변화나 개혁을 밀어붙이고 싶을 때 행사할 수 있다. 프랑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마지막으로 의회를 해산한 대통령은 1997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