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비행 중 뜯겨져나간 문짝, 불탄 채로 상공을 지르는 비행기 등의 밈(Meme)으로 더 유명해져버린 세계 최대 항공기 제조사 보잉. 품질 문제로 여전히 난항을 겪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효율만 추구해온 보잉의 경영방식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보잉 이사진들이 단기적 결실과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고객, 내부 구성원, 협력회사, 규제기관 등 다른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이익 창출에만 집중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원인도 제기됐다. 바로 제조공장 직원들의 채용과정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전세계 사람들의 발을 묶었다. 팬데믹이 끝나고 반사작용으로 최근까지도 여행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기체 주문의 양도 늘면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보잉이 마구잡이식으로, 항공과는 전혀 관련없는 업계의 신입사원을 생산직원으로 뽑고 ‘눈가리고 아웅’ 식의 교육을 통해 비행기를 조립해 온 게 화근이라는 설명이다.

보잉의 737맥스 기종에 적힌 로고. /로이터

◇커피·버거 만들다가 비행기 만들게 된 보잉의 신입 생산직들

11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보잉의 공장인력은 최근 몇 년간 극단적인 변화를 겪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외출이 봉쇄되고 하늘길이 막히며 수십년간 노하우를 쌓아온 고위급 생산직들이 대거 은퇴하게 됐다. 그러나 팬데믹이 끝나고 다시 여행수요가 폭발하면서 새로운 제트기 수요가 급증했고 세계 최대 항공사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보잉은 수년간 마구잡이식 채용에 나섰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미국의 수많은 맥도날드 레스토랑에 ‘채용 중입니다’라는 팻말이 붙은 것과 마찬가지로, 보잉의 주력 기종인 737을 생산하는 워싱턴주 렌턴 공장에도 ‘채용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승객 수백명을 실고 나르는 비행기의 제조공장이 마치 길거리 아르바이트 자리처럼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보잉은 퓨젯 사운드 지역에서만 월 평균 800명의 공장직원을 고용했다. 고용 속도는 다소 느려졌지만 해당 공장은 최근까지도 여전히 월 수백명의 신규채용이 이뤄지고 있다.

WSJ는 한 신입직원의 인터뷰를 함께 실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보잉의 생산직에 지원한 다니엘 호린은 비행기나 항공 제조 관련 전문가가 아니다. 과거 경력도 주조소 직원, 사이버 보안직군, 스타벅스 매니저 등 비행기 제조와는 생판 관련없는 업무들에 불과하다. 지난해 8월에 채용된 그는 난생처음 비행기를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됐음에도 제대로 된 교육 없이 바로 현장으로 투입돼 기체의 생산을 맡고 있다. 호린은 “일이 숙달되기 까지 3개월은 걸린 것 같다”며 “비행기는 한 두사람을 태우는 이동 수단이 아니다. 우리가 조그만 실수라도 하면 비행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현재 보잉의 제조공장에는 신입직원들로 가득하게 됐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이전에 근무하던 노련한 직원들보다 젊고, 비행기 제작 관련 경험이 없다. 문제가 있는 부품과 결함이 있는 장비를 처리하는 방법을 알거나, 새로운 동료에게 복잡한 제조 과정 중 올바른 오류 수정 절차를 알려주던 경력의 직원들은 현재 보잉 제조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기체 생산공장 직원들이 입을 모아 언급한 품질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이렇듯 공장 현장 인력의 경험 부족이다. 소수의 숙련된 직원들이 신입 직원들을 교육하는데 최선을 다했으나, 비행기 제조 교육은 결코 단기간에 끝날 수 없다. 수차례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보잉은 생산직군의 교육방식을 전면 재편했다. 일부 공장은 새로 뽑은 신입 직원을 한달 넘도록 공장 현장으로 보내지 않고 교육하고 있다.

보잉 기체 공장. /연합뉴스

◇”은퇴한 베테랑 자리 차지한 요즘 신입들, 美 노동생산성 떨어뜨려”

숙련된 근로자들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비단 보잉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미국 노동시장에서는 팬데믹 전후로 많은 기업들이 기존의 근로자들을 해고했다가 엔데믹으로 넘어가면서 신입들을 대거 고용하게 됐다. 이 같은 상황속에서 제조, 의료, 고객서비스 등 수많은 산업 분야에서 경험이 부족한 신입사원들이 유입됐다. 특히 기업들은 팬데믹을 처음 맞이했을 당시, 고연봉의 베테랑 근로자들에게 조기 퇴직을 제안했기 때문에 기업의 허리를 차지하는 중견 근로자들의 비중 감소가 두드러진다.

WSJ에 따르면 팬데믹 초기에 사라진 2200만개의 일자리가 최근 모두 회복됐다. 하지만 일자리 수가 회복되었을 뿐 베테랑 직원들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경험이 부족한 직원들이고, 그들을 훈련시켜야 했던 것은 얼마 남지 않은 고숙련 근로자들이었다. 이같은 상황을 겪으며 최근 몇년간 미국의 노동 생산성이 낮아졌다고 미국의 기업 경영진과 경제학자들은 분석했다.

모든 산업 분야가 겪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지만, 이런 상황은 항공업계에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여행 및 항공분야는 팬데믹과 함께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분야이자 엔데믹에 들어서도 가장 마지막이 되어서야 회복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국제 항공우주 근로자 협회의 751지구에는 약 3만명 이상의 보잉 직원들이 소속되어 있는데, 이 중 약 절반이 6년 미만의 경력을 가진 신입사원이다. 팬데믹 발생 전에는 신입사원의 비율이 25%도 안됐다. 보잉은 사태 직후 자정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신입사원을 베테랑 직원과 짝을 지어 근무할 수 있게 만들고 현장 투입 전 기본 교육시간도 크게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