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인공지능(AI)이라는 테마에 들썩이고 있다. AI를 개발 중인 스타트업들의 몸값이 뛰고 대기업들은 AI를 활용하기 위해 전담 부서, 새로운 임원직군을 신설하고 전 부서가 AI역량을 키우기 위해 교육받을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미 세계 전체 근로자의 75%가 직장에서 AI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AI가 초래한 변화는 이같은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AI로 발생한 다양한 위험들에 대한 우려도 나오는데, 특히 노동 시장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AI의 부흥으로 환영을 받을 것 같았던 기술·개발직군은 AI에 밀려 대규모 감원의 대상이 되거나, 어떤 프로그램을 다루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대우를 받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AI로 인해 위기에 몰리는 직군이 곧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이라는 경고도 내놓았다.

챗GPT와 오픈AI 일러스트. /연합뉴스

26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기술 쪽으로 취업이나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력서가 AI를 기준으로 변화하고 있다. 모든 회사가 AI를 다룰 줄 아는 직원을 선호하면서, 기존에 자신이 내세우던 강점보다는 AI를 얼마만큼 다뤄봤고, 회사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이력서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다. 최신 AI기술 관련 경험을 이력서에 반영하지 않으면 채용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개발직군 취업을 준비하는 아시프 다마니는 최근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구직난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을 다뤄본 경험이 있지만 2016년 이후로는 작업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 기술이 빠르게 변화해 자신의 이력서로는 어떤 곳에도 취업할 수 없었다”며 “결국 6800달러(약 930만원)를 투자해 엔지니어 교육기관 딥아틀라스에서 주최하는 2주 간의 온라인 AI부트캠프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LLM은 방대한 양의 텍스트 및 데이터를 사용해서 자연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학습된 AI모델을 말한다.

WSJ는 AI로 인해 기술직군의 노동시장에 이중구조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1군의 인재는 챗GPT처럼 콘텐츠 생성 능력을 가진 AI를 다루는 기술지식과 LLM 작업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반면 2군은 지난 몇 년 간 해고되었거나, 버티고 있는 대부분의 개발직군 인력들로, 사실상 최근 빅테크계에서 비용 감축을 위해 진행 중인 ‘칼바람 감원’의 대상이 되는 이들이다. 2군의 인력들은 이력서에 최신 기술 관련 경험을 쓰지 않으면 회사의 면접조차 볼 수 없을 정도다.

딥아틀라스는 최근 기존 기술 인력들의 능력 향상에 대한 수요를 느끼고 부트 캠프를 추가로 개설했다. 토니 필립스 딥아틀라스 창립자는 “기존의 기술직군들이 이제 자신의 업무가 쓸모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고 AI 경험을 쌓기 위해 백방으로 나서고 있다”며 “기술직군들은 AI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할 줄 아는 경쟁자들로 대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링크드인이 조사한 2024 직무 트렌드 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챗GPT 등의 AI 활용기술을 자신의 커리어에 추가하는 회원수는 전년 동월 대비 142배로 뛰어올랐다. 같은 조사에서 인력들은 이력서에 AI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그렇지 않은 이력서들에 비해 17% 더 많이 받아들여졌다. 이는 회사들의 기술 직군 채용의 풀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무역협회에 따르면 2019년 월평균 30만건에 이르던 기술직군 채용 공고는 지난 4월 18만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기술 직군 채용이 줄어드는 가운데 AI에 대한 수요만 증가하고 있는데, 노동시장 분석기업 라이트캐스트는 AI 및 머신러닝 채용 공고가 지난해 1월 전체 기술직군의 9.5%에서 지난달 11.5% 까지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특히 컨설팅 회사에서의 AI채용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대기업들이 관련 시범사업을 하려고 컨설팅받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나아가 향후 노동시장에서는 대기업들에서 AI인력을 추가로 채용할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AI로 인한 노동시장의 불안은 기술 직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IMF는 AI가 향후 2년 내 선진국 일자리의 60%, 전세계 일자리의 40%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우리가 잘 관리하면 생산성을 엄청나게 높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 더 많은 거짓 정보와 불평등을 가져올 수도 있다”며 “앞으로 AI의 영향력이 세계 노동시장에 지진해일(쓰나미)처럼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등 빅테크들이 AI가 기술 업계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한 연합체(컨소시엄)를 구성하기도 했다. 컨소시엄 참여 기업들은 AI가 어떻게 기술직 일자리를 변화시키고 있는지와 기술직 종사자들이 성공적으로 일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등을 함께 연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AI 기업을 비롯한 한편에서는 여전히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업무를 도와 효율성을 높여주는 데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PwC는 AI가 일자리의 종말을 부르기보단 노동자들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AI를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노동자들은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임금에 대한 더 큰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