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의 동남아시아 거점 역할을 하던 싱가포르의 위상이 예전만 같지 않다. 비용 절감을 위해 동남아 본사를 싱가포르가 아닌 곳으로 배치하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현지 시각) 닛케이(니혼게이자이신문)는 일본 무역진흥기구가 3월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싱가포르에 동남아 본부를 두고 있는 일본 기업 중 31%가 다른 나라로 동남아 본부를 이전했거나, 이전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9년에 이뤄진 동일한 조사에서 7.4%의 기업만이 동일한 답변을 한 것보다 늘어난 수치다.

싱가포르 시내 스카이라인. / AFP 연합뉴스

다수의 일본 기업은 동남아 본사의 모든 기능을 싱가포르 이외 지역으로 옮기기보다, 영업이나 기획과 같은 특정 기능을 이전하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태국은 싱가포르 대체 지역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 정부가 세금 인센티브를 통해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려는 것이 그 배경이다. 실제로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의 싱가포르 사무소는 싱가포르의 사무실 임대료와 기타 비용이 상승하자, 일부를 태국으로 이전했다.

태국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목적지는 말레이시아다. 인쇄용 잉크 제조사인 사카타인엑스(Sakata Inx)는 올해 2월 말레이시아에 동남아 본부를 설립했다. 해당 본부는 인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 사업을 총괄한다. 2024년 말이나 2025년 초에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사카타인엑스가 말레이시아를 선택한 이유는 세금 혜택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최대 10년 동안 5~10%의 소득세 우대를 포함해 ‘글로벌 서비스 허브’ 세제 혜택을 도입했다.

유럽 기업 역시 싱가포르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때 들어가는 비용 상승을 우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싱가포르에 있는 유럽상공회의소가 2023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9%는 운영 비용 상승을 고려할 때 일부 인력을 다른 동남아 국가로 옮길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닛케이는 “싱가포르는 여전히 위치, 언어능력, 금융 서비스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2019년 홍콩 시위 이후 금융 관련 기업이 홍콩을 떠나 싱가포르로 이전한 만큼 싱가포르가 당분간 그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