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말라버린 미국 캔자스의 밀 밭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에서 대평원 지역을 중심으로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60년 만에 최악의 밀 흉작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밀 작황에 따라 식료품발(發) 인플레이션, 이른바 애그플레이션이 지난해에 이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7일(현지 시각)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보통 6월 중순이면 대평원 지역에서 겨울 밀이 무르익어 수확을 준비한다. 하지만 올해는 수년간의 가뭄으로 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서 농부들이 수확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예상 수확량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추수하는 데 드는 비용이 수익을 초과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대평원에 자리한 캔자스주에서는 겨울 밀 재배 면적 가운데 93%가 이달 초 기준 가뭄 상태다. 또 주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이 당국의 가뭄 경보에서 가장 높은 3∼4등급에 각각 해당하는 ‘극심’ 또는 ‘예외적인’ 수준의 심각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캔자스주에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가뭄이 닥쳐 올해는 땅이 더 바싹 말라 있다. 최근 폭우로 일부 지역이 해갈되기는 했지만 겨울밀을 살리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였다.

미국 농무부는 캔자스주에서 생산하는 겨울 밀의 절반 이상이 열악한 상태로, 지난 2021년 1에이커(4047㎡)당 52부셸(곡물 중량 단위·1부셸=27.2㎏)이던 수확량이 올해는 29부셸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의 올해 밀 생산량이 1억9140만부셸로 1963년 이후 처음으로 2억부셸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농무부는 내다봤다. 캔자스주는 미국에서 겨울 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다.

농무부는 또 지속적인 가뭄에 따른 수확량 감소와 폐기량 증가로 경질붉은겨울밀(HRW)의 전국 생산량이 올해 5억3100만부셸에서 내년에는 5억1400만부셸로 감소하면서 지난 1957∼1958년 이후 최소치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HRW은 캔자스를 비롯한 대평원 지역에서 주로 생산된다.

WSJ는 올해 미국 전역에서 재배된 겨울 밀의 3분의 1가량이 폐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 1917년 이후 가장 높은 폐기율로 1930년대 ‘더스트볼’ 당시보다 높은 수준이다. 더스트볼은 1930∼1936년 미 중부 대평원 지역과 캐나다 평원 지대에서 오랜 가뭄으로 흙먼지 폭풍(dust bowl)이 계속돼 농작물에 심각한 피해를 줬던 시기다. 오클라호마와 텍사스 등 대평원 지역의 다른 주들은 캔자스보다 밀 폐기율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와중에 달러 강세, 높은 운송 요금, 러시아와 동유럽산 밀의 과잉 공급 등으로 미국산 밀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농부들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5대 밀 수출국이지만, 최근에는 불안정한 시장 상황 속에 동유럽산 밀 가격이 내려가면서 일부 제분업자들은 밀 수입을 고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