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레바논에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사용이 늘고 있다고 5일(현지 시각) CNBC가 보도했다.

지난 5일(현지 시각)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있는 레바논 중앙은행 주변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 도중 한 참가자가 은행 건물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레바논에서는 역사상 최악의 경제난을 초래했다고 평가받는 리아드 살라메 중앙은행 총재와 심각한 경제난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자국 화폐가치가 폭락하고 은행 시스템이 붕괴하자, 정부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민간이 암호화폐가 급격한 가격 변동을 겪고 있지만 자국 화폐보다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데다 실생활에서도 결제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CNBC 보도에 따르면, 레바논 파운드화(파운드)의 실질 가치는 2019년 경제 위기 이후 3년 새 95% 넘게 떨어졌다. 올해 레바논의 물가상승률은 작년 대비 178%로 전망된다.

자국 은행·통화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은 레바논인들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암호화폐 분석 업체 체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올해 레바논의 암호화폐 거래량은 전년 대비 약 120% 증가해 중동·북아프리카 국가 중 2위를 차지했다.

암호화폐 선호 현상은 실생활로도 이어지고 있다. 레바논 정부는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하지만 카페, 식당, 호텔, 전자 제품 매장에 이르기까지 기업들은 암호화폐를 이용한 결제를 허용하고 있으며 정부는 방관하고 있다.

청년들은 비트코인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직장을 찾아나섰고, 가정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증명(PoW) 방식으로 비트코인, 도지코인, 라이트코인 등을 채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CNBC는 “레바논에서 은행 계좌 잔액은 서류상 숫자에 불과하다”며 “레바논인들은 (자국 화폐보다) 새로운 통화 시스템(비트코인)에 베팅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2019년 시작된 레바논의 경제난은 2020년 코로나 대유행과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가 겹치면서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에 레바논 정부와 중앙은행은 25년간 달러당 약 1500파운드로 유지했던 공식 환율을 최근 1만5000파운드로 변경한다고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실질 가치를 반영하지 못해 암시장에서는 달러당 약 4만파운드에 교환되고 있다.

이 사이 시중은행들은 국내총생산(GDP)의 4배에 달하는 700억달러(약 98조원)의 손실을 입었다. 예금자들의 불안 심리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으로 이어졌고 사실상 은행 시스템이 마비됐다. 지급 능력이 떨어진 은행들은 현재 2019년 이전 맡겨 놓은 달러를 실제 가치의 15% 정도(달러당 15센트)에 지급하고 인출 금액에 제한을 두고 있다. 일상에서 상품 결제 수단으로 달러가 활용되지만 달러를 제값에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