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은 고물가 시대에 맞는 수요와 비용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각자의 상황에 맞춰 긴축에 나서거나 오히려 가격을 인상하되 투자를 강화해 브랜드 인지도 향상에 나서거나 프리미엄 제품군 확대하는 등의 전략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있다.

23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면도기, 치약 등을 제조하는 생활용품 기업 프록터앤드갬블(P&G)은 고물가로 인해 현금이 부족해지는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가격대의 브랜드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광고 캠페인과 신제품 홍보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이 과정에서 가격 인상은 불가피했지만 오히려 실적은 선방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의 한 마트. /로이터 연합뉴스

P&G은 3분기 순이익이 약 40억달러(5조7000억원)를 기록했다. 작년 동기 대비 4% 감소한 수준이지만, 세계적인 물가 상승과 러시아 사업 차질, 경기 침체 등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실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P&G는 올해 3분기 제품 판매량은 3% 감소했지만 가격을 9% 인상했다. P&G 최고재무책임자(CFO) 안드레 슐텐은 “물가 상승 압력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성장은 가격이 이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콜릿바 ‘킷캣’과 인스턴트 커피 ‘네스카페’ 등으로 유명한 네슬레도 가격 인상으로 실적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네슬레는 지난 19일 실적을 발표하며 올 한 해 영업이익률을 17% 안팎으로 관측했다. 작년 영업이익률인 17.4%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 셈이다. 네슬레는 올해 3분기 제품 판매 가격을 작년 동기 대비 9.5% 인상했다.

미 최대 통신사 중 하나인 버라이즌도 통신요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맞춰 주저없이 가격을 인상하는 방식은 일부 가입자들의 이탈을 초래했지만 회사 측은 가격 인상에 따른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맷 엘리스 버라이즌 CFO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고객들의 이탈에도 전체 무선서비스 수익은 증가했다”고 밝혔다.

인플레에 소비자들이 꼭 필요한 곳에만 지출하게 되면서 식품이나 가정용품과 같은 생활용품의 경우 의류나 전자제품 등 다른 제품에 비해 수요가 줄어드는 속도가 느린 경향이 있다. 실제 가전제품 제조사인 월풀은 급등하는 원자재, 에너지 가격에 비해 움츠러든 소비수요에 긴축을 단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마크 미처 월풀 CEO는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수요는 감소하고 비용은 상승하는 지금 상황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며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시기”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월풀은 지난 3분기에 매출 48억달러를 기록해 시장 기대치를 7% 하회했다. 영업이익률도 전년 동기 대비 6.5%p 하락한 5.0%에 머물렀다.

한편 WSJ는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을 인용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161개 사가 다음 주 3분기 실적을 보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팩트셋에 따르면 S&P 500 기업들의 3분기 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1.5%, 매출은 8.5% 각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