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연합뉴스

유럽중앙은행(ECB)이 8일 통화정책 결정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5%에서 1.25%로 0.75%포인트(p) 올리기로 결정했다. 0.75%p 금리 인상은 유로화를 도입한 1999년 이후 23년 만에 처음이다.

ECB는 이날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1.25%로, 수신금리와 한계대출금리 역시 각각 0.75%와 1.5%로 0.75%p씩 올리기로 했다.

ECB는 지난 7월 기준금리를 0.5%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해 2014년 이후 8년 간 유지해 온 마이너스 금리를 벗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점을 감안해 이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자이언트스텝(0.75%p 금리 인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역시 금리 인상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정책위원들이 단호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했고,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ECB는 이날 성명에서 “에너지와 식료품가격 급등, 다시 문을 연 일부부문의 수요압박, 공급망 차질이 물가상승세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너무 높고 장기간 목표치(물가 수준 2%)를 웃돌 가능성도 크다”고 내다봤다. 이번 자이언트스텝이 “물가 상승률을 시기적절하게 알맞은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그러나 ECB의 자이언트스텝 단행에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기는 올해 하반기와 내년 1분기에 걸쳐 침체에 빠질 전망이다. 유럽은 현재 물가 상승률이 사상 최고치(8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9.1%)로 치솟은 상태다. 유럽연합(EU) 공식 통계기구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이는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후 2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유로존 소비자 물가는 지난해 11월 이후 10개월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ECB는 이 점을 반영해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내년 0.9%, 2024년 1.9%로 낮춰 잡았다.

전문가들은 ECB의 과감한 자이언트스텝이 전 세계 금융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가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실제 이날 ECB가 금리인상 결정을 발표한 후 장 초반 상승세를 보이던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코메르츠방크 크리스토프 웨일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소비자 물가는 9월에도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며 “결과적으로 ECB는 금리를 계속 인상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겨울을 앞둔 유럽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에너지 공급 부족 우려로 인한 경기 침체 조짐이 강하게 번지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 등 유럽 주요 경제대국들은 이미 겨울철 난방을 줄여가며 에너지를 아낄 계획을 짜놓은 상태다.

ECB는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신규 정보와 물가 상승률 전망치에 기반해 정책금리 경로를 다시 평가할 것”이라며 “앞으로 정책금리는 정례 회의에 들어오는 데이터에 기반해서 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