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3일 중국 베이징 싼리툰 타이쿠리 광장에 설치된 중국 스포츠웨어 브랜드 안타스포츠의 팝업 스토어에 베이징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프리스타일 스키)이자 안타 브랜드 홍보대사인 구아이링의 영상이 나오고 있다. /김남희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입었던 중국 스포츠웨어 브랜드 안타스포츠(安踏 ANTA)의 중국 매출이 처음으로 미국 나이키 매출을 앞질렀다. 안타를 비롯해 리닝(李宁 Li-Ning), 엑스텝 등 중국 스포츠 용품 회사들은 지난해 초 신장 면화 논란을 계기로 불붙은 중국 애국 소비 열풍의 덕을 톡톡히 봤다. 미국 나이키, 독일 아디다스, 일본 아식스 등 외국 스포츠웨어 브랜드들이 소수 민족인 위구르족 강제 노동을 이유로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 생산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 후, 중국 소비자들은 외국 브랜드 불매 운동을 벌이며 국산 브랜드로 돌아섰다. 중국 스포츠 패션 시장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타는 올해 상반기(1~6월) 매출이 260억 위안(약 5조600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14% 증가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이 기간 중국 국내외 스포츠 용품 브랜드가 중국 시장에서 올린 매출 중 가장 많다.

중국 프리스타일 스키 대표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구아이링(에이린 구)이 금메달을 딴 후 안타스포츠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안타는 1991년 설립 후, 2007년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종목 코드 2020). 한국 휠라와 코오롱스포츠의 중국 사업 운영권도 안타가 갖고 있다.

안타는 올해 2월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중국 선수단 공식 단복을 맡았다. 7차례 중국 하계·동계올림픽 유니폼 스폰서로 선정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월 안타 로고가 그려진 캐나다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 패딩을 입고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시찰하기도 했다. 안타가 아크테릭스의 모회사다. 2020년 1월부터 안타의 브랜드 앰배서더(홍보대사)로 활동한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 구아이링(에이린 구)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중국 대표로 금메달을 연달아 따내며 인기가 치솟자, 안타 브랜드 인지도도 덩달아 수직상승했다.

중국 베이징의 스포츠웨어 브랜드 리닝 매장. /김남희 특파원

중국 체조 스타 리닝이 세운 스포츠웨어 브랜드 리닝도 상반기 매출이 20% 이상 늘었다. 리닝의 1~6월 매출은 124억 위안(약 2조4000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21.7% 증가했다. 리닝은 중국 체조 금메달리스트 리닝이 1989년 설립한 회사다. 올해로 33년차인 이 회사는 요즘 중국 Z 세대(현재 10~20대) 사이에 가장 힙한 패션 브랜드로 통한다. 리닝은 해외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를 얕잡아 보던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중국 리닝’이란 한자를 크게 넣은 옷을 내놔 중국 젊은 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중국 젊은 층의 애국주의 소비 트렌드인 궈차오(國朝 중국풍)가 ‘중국 리닝’에서 시작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 체조 금메달리스트 리닝이 설립한 스포츠웨어 브랜드 리닝. 리닝은 브랜드 정체성으로 '중국'을 강조해 중국 젊은 층 사이에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김남희 특파원

반면 중국에서 호시절을 누렸던 외국 브랜드는 신장 면화 사태 이후 중국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올해 상반기 나이키 중국 매출은 37억 달러(약 4조9400억 원)로 집계됐다. 특히 4~6월(회계 4분기) 중국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9% 감소했다. 전 세계 지역별 매출 중 중국 지역만 감소했다. 중국 실적 악화로 회계 4분기 나이키 전 세계 매출(122억 달러) 증가율도 마이너스(1% 감소)로 돌아섰다. 아디다스의 중국 매출은 6분기 연속 감소했다. 아디다스의 1~6월 중국 매출은 17억 유로(약 2조2700억 원)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35% 줄었다.

중국 베이징의 아디다스 매장. /김남희 특파원

나이키와 아디다스 모두 중국 코로나 상황과 봉쇄·격리 등 강력한 방역 조치를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나이키는 중국 각지 봉쇄로 100여 개 도시의 매장이 영업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타·리닝과 같은 중국 브랜드가 같은 환경에서 더 나은 실적을 거둔 것을 감안하면, 코로나 사태가 외국 스포츠 브랜드의 추락을 설명할 유일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 근본적으론 중국의 거세진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그동안 중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외국 브랜드의 콧대를 꺾어버렸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지난해 3월 신장 위구르족 강제 노역 의혹을 이유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후, 중국에서 불매 타깃이 됐다. 보이콧 기세가 수그러들긴 했지만, 냉담해진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리진 못했다.

중국 베이징의 나이키 매장 앞을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김남희 특파원

캐스퍼 로스테드 아디다스 최고경영자는 최근 실적 발표 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중국 소비자와의 접점을 찾아야 하는 현지화에 실패했다는 얘기다. 해당 인터뷰 내용이 알려진 후,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선 ‘아디다스CEO가 중국에서 잘못했다는 것을 시인했다(#阿迪CEO承认在中国犯了错误#)’라는 해시태그가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리닝·안타 등 중국 국산 브랜드가 서구 브랜드 불매 운동의 반사이익을 누리게 된 것이다. 중국 다쉐컨설팅은 중국에서 국산 브랜드 선호도가 커진 상황에서 외국 기업은 중국 소비자의 성향을 더 세밀하게 반영하는 현지화 전략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경기 침체도 나이키·아디다스 같은 외국 고가 브랜드가 고전하는 이유로 꼽힌다. 주 소비층인 20대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로 치솟은 상태다.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부 소비자군을 제외하면, 소비력이 떨어질 경우 값비싼 수입 브랜드보다 품질은 큰 차이 없으면서도 값은 더 저렴한 국산 브랜드를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