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지낸.래리(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트위터 캡처

서머스는 이날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연준이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여전히 과소평가 하고 있다”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느끼는 실망감이 상당히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2021년은 연준이 통화정책에 실패한 해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을 때, 연준이 강력한 긴축 정책으로 인플레이션 통제에 나섰어야 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간과하며 방향성을 정하지 못한 탓에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유대계 미국인인 서머스는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석좌교수와 함께 미국 경제학계가 배출한 ‘3대 수퍼스타’로 불린다. 16세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조기 입학했고, 27세에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이듬해인 1983년 하버드대 역사상 최연소 종신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역임했다. 재무장관 시절에는 금융권 규제 완화와 자본 확충 등에 주력했고, NEC 위원장 시절에는 자동차 산업 지원 정책을 펼쳐 죽어가던 미국 자동차 기업 GM과 크라이슬러를 살려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에게 지난 1년6개월은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했다. 지난해 2월 워싱턴포스트(WP) 기고를 통해 “한 세대 동안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한 게 시작이었다. 지난해 1월과 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1.4%와 1.7%. 여전히 저물가였다. 그럼에도 서머스는 친정인 바이든 행정부의 돈 풀기를 대놓고 비판하며 물가 경고의 선봉에 섰다. 그 과정에서 크루그먼 같은 민주당 성향 인사에게서 ‘바보’ ‘정치꾼’ 조롱까지 들었다.

그런데 ”결국 서머스가 맞았다”는 말이 요즘 미국 월가와 학계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닛 옐런 재무장관,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등을 제쳐두고 서머스와 통화한 사실까지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최악이다. 급한 마음에 자신을 1년6개월 동안 비판한 서머스에게 이례적으로 자문을 구한 것. 월가의 한 채권 어드바이저는 “이제 서머스의 언급은 챙겨서 볼 수밖에 없게 됐다”고 전했다.

그런 서머스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연준 위원들이 2023년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 2024년 실업률 목표치를 4.1%로 제시한 것에 대해 “굉장히 허무맹랑(highly implausible)’한 수치라고 생각한다”면서 “연준 위원들이 미국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앞서 미국 노동부는 지난 13일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 대비 9.1% 상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1981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머스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9%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준이 아직도 방향성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경기침체 가능성까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연준이 강조하는 경제 연착륙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달러 강세 지속과 신흥국의 경제 전망에 대한 발언도 내놨다. 서머스는 “일부 신흥국이 달러 강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1998년도 같은 외환 위기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통화정책이 불안정한 터키, 아르헨티나 같은 국가들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엔화 약세 지속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일본 중앙은행이 제로 금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엔화 가치를 회복하는데 가장 큰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