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가 천연가스와 원자력발전을 지속가능한 녹색 분류 체계(Taxonomy·택소노미)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원전과 천연가스가 택소노미에 포함되면 해당 분야에 대한 유럽 ‘녹색 금융’의 투자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AP·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유럽의회는 이날 관련 투표에서 찬성 328표, 반대 278표, 기권 33표로 지난 2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의 택소노미 포함안을 승인했다. EU 27개 회원국 중 20개국이 거부하지 않는다면 집행위에서 결정된 택소노미는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유럽연합 의회 의원들이 6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원전과 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앞서 유럽의회 상임위원회 두 곳(경제통화위원회와 환경보건위원회)은 지난달 15일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택소노미에 포함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76표·반대 62표로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러나 본회의에서는 포함시키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택소노미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의 범위를 정리하는 체계다.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여기에 포함됐다는 것은 친환경 그린 에너지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또 택소노미가 투자자들의 친환경 녹색 투자의 지침으로 활용되는 만큼, 이번 결정으로 원자력과 천연가스 투자가 확대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EU가 지난 2020년 6월 처음 택소노미를 발표했을 당시 천연가스와 원자력발전은 택소노미에 포함되지 않았다. 천연가스는 발전 과정에 온실가스인 메탄이 배출된다는 점에서, 원자력 발전은 방사능폐기물 처리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택소노미에 포함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EU는 지난해 12월 택소노미 초안에서 천연가스와 원자력발전을 포함했고, 지난 2월 이 초안을 확정했다. 완전하게 재생 가능한 에너지가 아니더라도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과도기적 에너지’도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EU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신규 원전은 2045년 이전에 건설 허가를 받아야 하고, 2050년까지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운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기존 원전은 2025년부터 더 안전한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해야 한다.

원전 의존도가 높은 유럽국가는 한숨 돌리게 됐다. EU 회원국 중에서는 원전 의존도가 높은 프랑스를 비릇해 핀란드, 폴란드, 체코 등이 이번 결정의 수혜를 입계 될 전망이다. 반면 안전상의 이유로 탈원전을 표방하고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덴마크 등은 이번 결정을 반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산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원전이 제외됐던 ‘K택소노미’(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넣는 작업이 빠르게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는 오는 2023년부터 원전을 포함한 K택소노미를 현장에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다음달까지 수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수정된 K택소노미가 마련되면 원전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수주활동을 벌이고, 한국형 원전인 APR1400 등 노형 수출 등으로 수출 형태를 다각화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바 있다. EU의 결정으로 새 정부의 원전 수출 확대 방안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