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진 스리랑카에 570억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고 로이터 통신과 인도 ANI 통신 등이 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스리랑카는 주력 산업인 관광 부문이 붕괴하고 대외 부채가 급증한 가운데 재정 정책 실패까지 겹치면서 1948년 독립 후 최악이라고 불리는 경제난에 직면했다.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17일(현지시간) 시민들이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의 허수아비를 앞세운 채 퇴진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스리랑카는 '일시적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하는 등 국가 부도 상황에 빠져 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스리랑카 주재 중국대사관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중국은 힘든 시기에 처한 스리랑카 국민을 지원하기 위해 긴급히 필요한 의약품, 식품, 연료 등 구매용으로 3억 위안(약 570억원)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중국의 스리랑카 긴급 지원금 규모는 5억 위안(약 950억원)으로 늘었다.

중국은 스리랑카 경제 위기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스리랑카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중국에 막대한 돈을 빌렸지만, 인프라 사업 실적이 부진해 빚더미에 오르며 위기를 키웠기 때문이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9월과 10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순방 중 처음 언급했다. ‘일대(一帶)’는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 ‘일로(一路)’는 중국에서 동남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를 뜻한다.

그런데도 중국은 스리랑카 지원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해 12월 스리랑카와 15억 달러(약 1조9000억원) 규모의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며 지원했지만 정작 올해 스리랑카의 경제위기가 깊어진 후에는 대체로 관망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중국이 빚의 늪에 빠진 스리랑카가 항구나 공항 등 전략 자산으로 채무를 대신 상환하겠다고 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실제로 스리랑카는 중국으로부터 빌린 대규모 차관으로 함반토타항을 건설했으나, 차관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자 2017년 중국 국영 항만기업인 자오상쥐(招商局)에 99년 기한으로 항만 운영권을 넘겨주기도 했다.

ANI에 따르면 스리랑카가 중국에 진 채무 규모는 총 80억달러(약 10조원)에 달한다. 스리랑카의 대외채무 가운데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17% 정도로 추산된다.

중국이 돌연 태도를 바꿔 스리랑카 지원에 가세한 것은 최근 ‘또 다른 14억 인구’의 거대 시장인 인도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자극제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인도는 2020년 중국과 국경 충돌까지 벌이는 등 중국과 남아시아 곳곳에서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인도는 스리랑카의 현 라자팍사 정부가 친중 성향으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신용 한도(마이너스 통장과 비슷한 개념) 확대 등을 통해 올해 약 30억달러(약 3조8000억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스리랑카는 지난달 초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때까지 510억 달러(약 64조원)에 달하는 대외 부채 상환을 유예한다며 일시적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상태다. 생필품난으로 민생이 파탄지경에 이르자 수도 콜롬보 등 곳곳에서는 정권퇴진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연합(SJB)은 이날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및 현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지만, SJB의 불신임 시도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SJB의 의석수는 54석으로 전체 225석의 과반에 크게 못 미치는 데다 헌법상 대통령은 불신임을 통해 퇴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스리랑카는 인도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다. 한반도의 3분의 1 정도의 면적에 약 2100만명이 모여 산다. 18세기부터 영국 식민지배를 받아오다 1948년 독립했다. 1972년 국명을 실론에서 스리랑카공화국으로 바꿨고, 1978년부터는 현재 이름인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을 사용하고 있다.

‘인도양의 진주’로 불릴 만큼 경치가 아름답고 차(茶) 문화가 발달한 데다 고대 인도 문화의 영향으로 불교 유적이 풍부해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중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와 호주, 중동 등으로 편리하게 연결되는 해운 요충지로서의 잠재력도 크다. 최악의 경제 위기에도 중국과 인도가 관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