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최고 악당'이라는 오명을 얻었던 미국 국적의 글로벌 에너지 대기업 코크 인더스트리즈(Koch Industries·이하 코크)가 최근 전기차 배터리 분야로 투자 다변화를 꾀하며 녹색 에너지계 큰 손으로 떠올랐다.

원유 유통과 정제 사업으로 시작해 원자재 거래부터 건축 자재까지 망라하는 공룡 기업의 변화로 미국의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 작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국적의 글로벌 에너지 대기업인 코크 인더스트리즈의 로고. /AP 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 시각) 금융정보업체 팩트셋 자료를 인용해 코크의 한 사업부가 최근 1년 6개월 동안 미국 배터리 공급망과 전기차 분야에 최소 7억5000만달러(약 9100억 5000만 원) 상당의 투자를 10건 이상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관련 산업 투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고 팩트셋은 설명했다.

미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전직 수석 매니저인 비바스 쿠마르 애널리스트는 WSJ에 "80년 전 정유 엔지니어링 회사로 설립된 코크 인더스트리즈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다각화된 배터리 투자가로 부상했다"며 "배터리 공급망에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참가자가 합류했는지 놀라울 뿐"이라고 했다.

캔자스주(州) 위치토에 본사를 둔 코크는 곡물 대기업 카길(Cargill)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비상장 기업으로 꼽힌다. 정유사로 출발해 70여개 국가에 진출한 코크는 석유화학 제품을 비롯해 비료, 유리, 고무, 광물, 소재, 전자 및 자동차부품, 의료기기, 제지, 필터, 에너지 및 산업 솔루션, 금융투자, 축산까지 다양한 사업 분야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직원은 12만2000명에 달한다.

코크 인더스트리즈 최고경영자(CEO)인 찰스 코크. /코크 인더스트리즈 트위터

코크의 최고경영자(CEO)인 찰스 코크는 지난해 10월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를 앞두고 선정한 '미국의 기후 위기 최고 악당' 12명에 이름을 올렸다. 대형 에너지 기업에선 코크 CEO와 마이크 워스 셰브론 CEO, 대런 우즈 엑슨모빌 CEO가 선정됐다. 가디언은 "코크 인더스트리즈는 1997년부터 21년 간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단체에 1억5000만달러(약 1822억 원)의 자금을 지원해왔다"고 했다.

미 정부의 기후 대응 규제에 반대하며 기후변화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던 코크가 미국 배터리 공급망 전체로 투자를 대폭 분산하며 최대 후원자로 부상한 것이다. 코크는 현재 노르웨이 배터리 생산업체인 프레이어 배터리(Freyr Battery)와 배터리 열 방지 소재 등을 만드는 스타트업 아스펜 에어로젤(Aspen Aerogels Inc)의 최대 주주다. 지난달에는 이 회사 에어로젤 사업에 1억5000만달러를 댔다.

WSJ은 이러한 기술 사업체 상당수가 제품 상용화를 위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며 코크 인더스트리즈는 중요한 개발 시기에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미국 배터리 산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톰 젠슨 프레이어 배터리 CEO는 "에너지 공급 체계를 화석연료 기반의 방법으로부터 재생에너지 기반의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전환하는 작업 속도는 코크와 같은 대형 회사들의 참여 여부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사측은 배터리 분야 투자와 전략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10월에도 자회사인 코크 스트레티직 플랫폼(KSP)을 통해 캐나다 폐배터리 재활용 회사 리사이클이 발생한 1억 달러(약 1214억 원) 상당의 전환사채를 매입했다. 시장에선 코크 인더스트리즈가 기후 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개발, 전기차 시대에 생존 전략으로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선점에도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22일(현지 시각) 러시아 드론 공격을 받아 크게 파괴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소재 국립과학원 연구소 건물 주변에서 소방대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키이우 점령을 위한 공세를 강화하는 러시아군의 이날 드론 공격으로 최소 1명이 사망했다. /AFP 연합뉴스

한편 WSJ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이 생활 필수품을 제외하고는 러시아 내 판매 중단을 선언했지만, 코크 인더스트리즈와 유니레버, P&G 등 글로벌 업체들은 생필품으로 보기 어려운 제품들을 여전히 러시아에서 판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크 측은 러시아 사업 유지에 대해 "러시아 사업은 코크의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우리는 그곳의 직원을 버리거나 제조시설을 러시아 정부에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면 직원들이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되고 득보다 실이 더 커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