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서방의 강력한 경제 제재 여파로 채무 상환에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부채 상환 부담이 늘어난 데다, 확보 가능한 달러화도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루블화 지폐로 장을 보는 모습.

일본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러시아의 달러화 표기 국채 미상환 잔액은 330억 달러(약 39조 7800억원)로 추산된다. 첫 상환일은 오는 4월이다. 회사채 등까지 포함하면 1350억달러(약 162조 7500억원)의 대외 채무 만기일이 1년 안에 도래하는데, 이는 러시아의 전체 대외 채무의 30% 가까운 규모다.

여기에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정크 수준인 BB+로 강등했는데, 다른 신평사들 역시 뒤따를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퇴출이 결정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스위프트는 전 세계 200개 이상 국가 주요 은행 및 금융회사 1만 1000여곳이 이용하는 국제 송금·결제 시스템으로, 러시아의 수출 대금 대부분이 이를 통해 달러화로 지급된다. 러시아가 달러화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린 셈이다.

해외 자산 동결도 대형 악재다. CNN은 총 1조달러(약 1205조 4000억원) 상당의 러시아 해외 자산이 현재 제재로 동결됐다고 보도했다. 급기야 러시아 국민들까지 달러화 사재기에 나서면서 러시아 내 달러화는 씨가 말랐다.

지난 달 초중순 달러당 75루블 안팎이었던 루블화 가치는 스위프트 제재 발표 당일인 지난달 28일 달러당 119루블까지 치솟았다. 불과 보름여 만에 루블화 가치가 40% 이상 폭락한 것. 러시아는 달러화로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데, 보유 중인 루블화를 달러화로 환전하는 경우 빚 부담도 40%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채무를 상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했고, 같은 날 유럽 금융시장에서는 러시아 국채 가격이 폭락했다. 2047년 만기 달러화 표기 러시아 국채 금리는 주말까지만 해도 8%였지만 하루 만에 18%까지 치솟았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로 어려움을 겪었던 러시아는 외환보유액을 늘리고 대외 채무를 줄이는 등 유사 상황에 대비해 왔다. 현재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6300억달러(약 759조원)로 세계 4위 규모다. 한 때 7000억달러를 넘었던 대외 채무는 외환보유액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5000억달러(약 602조 6000억원) 이하로 줄었다.

하지만 스위프트에서 배제되면서 해외에 둔 외환보유액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없게 됐고, 루블화 폭락도 방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의 외환보유액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4000억달러가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등 해외 금융기관에 보관돼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대폭 인상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외 외화 대출·송금 금지 및 수출 기업들의 외화 수입 80% 강제 매각이라는 이례적 조치를 취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적 대응은 큰 효과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닛케이는 “러시아의 신용위기는 루블화의 추가 폭락을 부추겨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예금을 외화 또는 현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멈추지 않아 유동성이 부족해지는 등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