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반도체 기판인 웨이퍼 생산업체 대만 글로벌웨이퍼스와 독일 실트로닉의 인수합병(M&A)을 불허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이 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담당 부처인 경제부가 인수 승인 기한인 지난달 31일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자국 반도체 산업을 독립적으로 육성하려는 독일 정부가 자국 기업에 대한 매각을 의도적으로 막았다는 질분석이 나온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 /EPA 연합뉴스

독일 경제기후부는 이날 성명에서 중국 반독점 당국의 승인 검토 기간이 길어졌다며 “투자 심사에 필요한 모든 검증 단계를 마감일까지 완료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당초 글로벌웨이퍼스는 43억5000유로(약 5조 8500억 원)에 실트로닉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시장에선 두 회사가 합병하면 일본 신에츠에 이어 세계 2위 웨이퍼 생산기업이 탄생할 거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세계 각국이 인공지능(AI)과 사이버보안, 로봇, 우주산업 등 첨단 반도체가 핵심인 미래 산업 분야에서 주요 기술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가운데 나왔다고 FT는 전했다. 글로벌웨이퍼스가 유럽 내 입지 강화를 목표로 삼고 지난달 중국 정부로부터 인수합병 승인을 받았으나 독일과 유럽연합(EU)이 ‘기술 리더십 종속’을 우려해 인수를 불허했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프 폰플로토 실트로닉 이사회 의장은 인수 무산 결과에 대해 “실망했다”면서도 “실트로닉 자체로도 대처할 준비가 돼 있으며 전보다 상황이 나아졌다”고 했다. 글로벌웨이퍼스는 실트로닉에 대해 M&A 실패 위약금 5000만 유로를 물어내게 됐다. 다만 실트로닉은 인수 논의를 진행 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고객사들과 수십억 유로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독일 프랑크프루트 알게마이네 자이퉁(FAZ)는 전했다.

FAZ는 중국 최대 가전업체 메이디가 지난 2016년 독일의 대표적인 로봇업체 쿠카를 인수한 것을 계기로 독일 정부가 투자 점검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등 EU 외부 국가의 자국 기업 인수를 경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독일 정부의 투자 점검 건수는 2019년 78건에서 2020년 106건, 지난해에는 306건으로 늘었다. 그간 유럽에서는 아시아와 미국 등에 대한 반도체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세계 반도체 생산량 중 EU의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EU 집행위원회는 이 수치를 2030년까지 20%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독일 정부도 지난달 반도체 관련 32개 프로젝트에 총 100억 유로를 투자키로 했다. 최근에는 인텔이 200억 유로를 들여 유럽 내 마이크로칩 생산공장을 신축하는 계획을 발표하고, 부지 선정차 복수의 EU 회원국과 협상을 진행했다고 F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