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화폐인 리라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며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에르도안 정부의 중앙은행이 지난 9월 이후 3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내려 시중에 통화량이 늘어나고 외화 대비 자국 통화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인 터키은행은 이날 성명을 내고 "환율의 불건전한 가격 형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매매에 개입했다"고 밝혔다. 터키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21%에 육박한 상태다. 올해 초 달러당 7리라 수준이었던 환율은 전날 기준 14.3달러까지 떨어졌다. 청년 실업률은 25%에 달한 가운데 터키인의 주식인 빵을 만드는 밀가루 값은 전월 대비 두 배를 넘어섰다.
터키의 물가 대란은 18년 간 장기집권 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 정책의 결과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도 금리 인하를 강행했다. 통상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지만, 에르도안 정부는 "이슬람 교리에 적합하지 않다"며 고금리에 반대했다. '이자'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교 경전의 논리를 경제 체제에도 강요하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도 "금리는 만악(萬惡)의 부모"라며 금리 인상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2일 기준금리 인하를 반대한 뤼트피 엘반 재무장관을 해임했다. 또 2023년 총선과 대선 전까지 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3월에는 터키은행의 나치 아그발 총재를 경질했다. 아그발 총재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작년 11월 취임 이후 기준금리를 세 차례에 걸쳐 올렸는데, 이러한 조치가 경기 부양을 가로막는다는 논리였다. 취임한 지 4개월 밖에 안 된 아그발이 쫓겨난 자리에는 여당인 정의개발당 의원이 임명됐다.
'에르도안 리스크'에 반발 여론도 거세졌다. 지난달 말에는 수도 앙카라 등 터키 전역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대통령 규탄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정부가 제멋대로 금리를 인하해 물가 폭등을 유발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정부는 경찰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을 대거 연행했다. 국민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물가 상승을 잡으려면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막무가내 국정 운영의 배후에는 핵심 지지층인 이슬람 강경파가 있다. 터키가 내각제 체제였던 2003년 총리가 된 에르도안은 '총리 4선 금지' 헌법에 따라 2014년 대선에 출마해 내각제 하의 대통령이 됐다. 이후 2017년 개헌으로 철권 통치의 기반을 닦은 뒤 '정교 분리 원칙'을 깨고 공공 영역에서 강경 이슬람주의를 확대했다. 취임 초기에는 경제성장을 이끌며 외국인 투자와 수출이 크게 늘었다. '빈민가 출신'이라는 입지전적 면모가 더해져 에르도안의 지지율을 높이기도 했다.
한편 에르도안은 지난 8일 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리라화 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데 대해 "물가 상승은 탐욕과 수입 가격 상승 때문"이라며 "매점매석 같은 중대한 범죄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와 정치적 불안정이 화폐 가치 폭락을 야기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어 "에너지와 식품 가격이 곧 균형을 찾을 것"이라며 "더 낮은 금리와 안정적인 통화로 생산과 고용을 늘리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