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인플레이션으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중요한 시험에 올랐다. 올 1월에 취임한 바이든의 지지율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으며, 코로나 재확산까지 우려되는 현 상황에서 물가마저 잡지 못한다면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미 공영방송 NPR이 지난 24일 발표한 매리스트와의 공동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직전 조사보다 2%포인트 하락한 42%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응답자들은 가장 큰 경제적 우려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39%가 인플레이션을 꼽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경내 사우스 코트 오디토리엄에서 에너지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가를 낮추기 위해 비축유 5천만 배럴 방출을 지시했다며, 한국을 포함해 중국과 일본, 인도, 영국 등도 동참한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특히 현재와 같은 급격한 인플레이션은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진영 전체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8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이전 정권 사례들을 근거로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은 특히 좌파 진영에 더 큰 피해를 입혔다”고 지적했다.

FT는 사설을 통해 “1972년 공화당 리처드 닉슨이 연준 의장을 압박해 무리하게 저금리를 유지하도록 했고 대통령 연임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어 FT는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197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아서 번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게 통화정책 완화를 요구해 재선에 성공한 사례를 언급했다.

이는 저금리로 인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경제적 빈부 격차가 더 벌어져 자산과 소득 불평등이 심화돼 좌파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가 떨어진다는 견해에 근거한다.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한 만큼, 자산 가격 상승의 이득을 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불평등의 엔진’(Engine of Inequality)의 저자이자 재무분석가인 캐런 페트로우는 “연준의 지난 10여년 간 저금리 정책은 주가 상승을 통해 부유층이 자산을 더 늘리는 데 기여했다”며 “경제적 불평등 관점에서 보면 (저금리 기조를 통해)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또 바이든 정부는 지난 3월 1조9000억달러의 경기부양책 등을 무리하게 진행시키며 인플레이션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여론으로부터 좀처럼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실제 백악관은 지난 3월 법제화된 1조9000억달러(약 2270조원) 규모의 ‘미국 구제 계획’이 물가상승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5일 처리된 1조2000억달러(1440조원) 규모의 인프라 법안, 지난 19일 하원을 통과한 2조달러(2390조원) 규모의 사회복지 예산안도 내년까지 물가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회를 잡은 공화당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대규모 지출계획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공세를 펴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가 물가안정을 시켜야 국정 운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상당 부분 유가의 향방에 달렸다는 반응이다. 현재 미 전국 휘발유 평균가격이 7년 만에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가구당 자동차 보유 대수가 2대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휘발유값 고공행진은 지지율에 치명적이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비축유 방출을 요청하면서까지 국제적인 비축유 방출을 추진하고 있지만 업계의 관측은 비관적이다. 실제 비축유 방출에도 국제유가는 상승했고, 비축유만으로는 유가를 잡을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골드만삭스 등 주요 기관은 향후 국제유가가 원유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면서 당분간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