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 인도 등 동맹국에 비축유 방출을 요청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1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비축유 방출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위치한 전략 비축유(SPR) 저장고 전경. /EPA 연합뉴스

로이터는 이날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가 세계 최대 오일 소비국에 속하는 이들 국가에 비축유 방출을 통해 유가를 잡고 경제 회복을 앞당기자는 취지로 이같이 요청했다고 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는 이 같은 사실에 대한 확인 요청에 답변을 거부하고,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그는 "백악관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을 보장하고, 가격이 글로벌 경제 성장을 저해하지 않도록 요 몇 주간 다른 에너지 소비국과 대화하고 있다"면서 "진행 중인 대화 관련해 보고할 건 없고, 조치가 필요할지 필요하다면 어떤 조치를 취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인 한국과 일본, 인도는 물론 중국에까지 비축유 방출을 요청하고 나선 것은 최근 유가와 소비자 물가 급등이 정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집권 11개월 차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최저치를 경신했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뉴스가 지난 7~10일 미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3.5%p)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41%로 올해 1월 취임 후 가장 낮았다. 부정 평가는 53%에 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의 지지율 하락이 이 같은 인플레이션과 유가 급등 때문이라고 보고 있으며, 사태가 장기화하면 내년 중간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최근 1년 사이 6.2% 상승했는데, 에너지 부문이 30% 급등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7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던 국제 유가는 소폭 하락했지만,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1년 전보다 60% 이상 오른 갤런당 평균 3.41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바이든 대통령은 '기름값 잡기'에 팔을 걷어 부쳤다. 그런데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산유국에 증산 속도를 높여달라고 요구했지만 좀처럼 관철되지 않자, 원유 소비국들을 동원해 압박 강화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한 소식통은 로이터에 "세계 최대 소비국들이 OPEC에 '행동을 바꾸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상징성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축유 방출은 미국의 전략비축유(SPR)를 판매하거나 빌리는 형태로 이뤄지게 된다. 시장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려면 비축유 방출량이 2000만~3000만 배럴 이상은 돼야 한다고 이번 논의에 관여한 소식통은 전했다.

미국은 중동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을 거의 중단해 빚어진 석유파동을 계기로 1975년부터 국가전략적으로 필요한 원유를 따로 쌓기 시작했다. 루이지애나, 텍사스 해안 일대 4개 보안구역의 수 십개 지하 시설에 6억600만배럴의 비축유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대 경제국 미국이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필요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규모다.

미국 대통령이 SPR을 방출한 경우는 3차례 있었다. 가장 최근은 OPEC 회원국인 리비아에서 전쟁이 발발한 2011년이었다. 다른 두 차례는 걸프전쟁이 일어났던 1991년 걸프전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덥쳤던 2005년이다.

원유소비국 모임인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미국 이외에도 우리나라와 영국, 독일, 일본, 호주를 포함해 다른 29개 회원국들도 90일치 원유수입분을 비상용으로 보유해야 한다. IEA의 준회원국이자 세계 2위의 원유소비국인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비축유가 많다. 중국은 15년 전부터 SPR을 쌓았다. 미국, 일본 다음으로 비축유가 많은 국가는 일본이다.

한편 로이터는 바이든 행정부의 비축유 방출 요청에 일본은 이에 긍정적으로 답했지만, 다른 국가들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백악관의 비축유 방출 요청 보도가 나간 뒤 미국의 원유 선물가격은 배럴당 78.36달러에서 하락한 78.18달러에 거래됐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80.28달러에 거래를 마친 뒤 80.21달러로 추가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