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스튜디오의 첫 아시아인 슈퍼히어로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하 샹치)'이 지난 1일 한국을 시작으로 전세계 시장에서 개봉됐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 샹치가 수련하는 쿵푸의 본고장이면서 아시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이 영화가 아직까지 상영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샹치의 개봉을 앞둔 지난달 1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영화관 앞에서 포스터와 간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AP

CNBC는 2일(현지시각) 샹치가 마블 스튜디오가 만든 영화 가운데 중국 정부의 배급 승인을 받지 못한 첫번째 영화이자 중국에서 개봉하지 못한 두번째 영화가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샹치의 배급과 상영을 거부한 것은 영화의 기반이 된 원작 만화의 스토리와 구성이 논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블 스튜디오는 마블 코믹스의 원작 만화를 영화화해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어벤져스, 헐크, 엑스맨 등 숱한 슈퍼히어로영화를 제작해 성공을 거뒀다. 샹치는 지난 1970년대에 만화로 첫 선을 보인 캐릭터인데, 마블이 아시아인을 주인공으로 영화화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이 영화는 쿵푸를 연마한 무림고수 샹치가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마카오 등 여러 장소에서 적들과 맞서 싸우며 겪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캐나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으로 스타가 된 중국계 캐나다 배우 시무 리우가 주인공 샹치 역을 맡았으며 양조위, 양자경 등 국내에서도 유명한 중화권의 스타 배우들이 비중있는 역할로 가세했다.

영화 샹치의 한 장면/AP

1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한 샹치는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하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발길이 끊겼던 국내 극장가의 '단비'가 됐다. 이틀 동안 샹치의 국내 누적 관객 수는 22만570명을 기록했다.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시장에서도 아시아인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마블의 슈퍼히어로영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개봉이 이대로 계속 막힐 경우 샹치는 마블이 당초 기대한 만큼의 수익을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북미 시장에서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시장으로 그 동안 마블이 제작한 히어로영화가 줄곧 대박을 터뜨렸던 곳이다.

CNBC는 마블이 샹치를 중국에서 개봉하지 못하게 된 것은 마치 거액의 돈을 테이블 위에 그냥 두고 방치하는 결과와 같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샹치의 배급과 상영을 거부한 것은 이 영화가 중국이 추구하는 사상과 중화 민족주의 이념을 거스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록 아시아인을 주인공을 내세우고 그가 중국의 전통 무술인 쿵푸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이는 동양권 무술에 관심을 가진 서양인들의 구미를 맞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중국 정부가 원하는 가치관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일 베이징에서 개막한 2021 중국국제서비스무역교역회(CIFTIS)에서 영상을 통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중국 정부는 다양한 영역에서 통제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올 들어 알리바바와 텐센트, 디디추싱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터넷 안보를 저해하고 국가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저질렀다며 거액의 과징금을 물리거나 사업을 가로막았다. 최근에는 천문학적 소득을 올리는 일부 연예인들을 잇따라 처벌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부의 통제는 지난달 시진핑 국가주석이 언급한 '공동 부유' 사상을 현실에 옮기겠다는 목적에 따른 것이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1980년대 덩샤오핑 집권 시기부터 오랜 기간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고속 성장을 이어왔지만, 시진핑 집권 후 최근 들어 노골적으로 정치 이념을 앞세운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샹치의 상영을 가로막은 것도 이 영화가 아시아인이 주인공이지만, 미국적 색채가 강한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