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부호이자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의 눈이 우주를 향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블루오리진이 오는 7월 처음으로 민간인을 태운 우주관광에 나설 예정이다. 미 경제전문매체 CNBC 등에 따르면, 베이조스는 블루오리진 투자를 위해 최근 6개월간 10조원에 이르는 아마존 주식도 매각했다. 오는 6월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베이조스가 민간 우주산업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를 따라잡기 위해 실탄 마련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이날 미국 텍사스주 보카치카 발사 기지에서 화성 이주용 우주선 스타십의 시제품이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4전5기 만의 성공이다. 이전까지 이뤄진 4번의 시험 비행은 모두 마지막 착륙 과정 또는 직후 용접 결함 등의 문제로 우주선이 폭발했다. 이날 비행한 우주선은 발사 과정에서 일부 불길이 붙었지만 10㎞ 상공까지 올라간 뒤 6분 만에 무사히 착륙했다. 로켓으로 쓸 슈퍼헤비 시제품은 아직 제작 단계에 있다.

누구나 우주에 갈 수 있는 시대를 열기 위한 두 억만장자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는 모양새다. 현재로써는 머스크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베이조스의 ‘머스크 따라잡기’가 심상치 않아 언제 판도가 뒤집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베이조스는 그동안 매년 1조원어치의 아마존 주식을 매각해 블루오리진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공언해왔다.

스페이스X가 제작한 화성 우주선의 시제품 스타십 SN15가 5일(현지 시각) 미국 텍사스주 남부 보카치카에서 발사되고 있다. 스타십 SN15는 이날 발사 후 10km 상공으로 올라간 뒤 직립으로 다시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연합뉴스

◇ “드디어 해냈다” 4전 5기 끝에 성공한 머스크의 스타십

머스크가 처음으로 스타십을 공개한건 2019년이다. 스타십은 높이가 120m에 이르는 로켓으로, 사람 100명과 화물 100t을 싣고 달 기지와 화성을 오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머스크는 2024년 첫 유인 화성 탐사선을 발사한 뒤, 2050년까지 수만명이 사는 화성 거주지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날 비행한 스타십 시제품은 실제 계획의 절반 크기로, 스페이스X는 점차 그 크기를 키워 나갈 예정이다.

스페이스X는 앞서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 모두 4차례 시제품 비행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착륙 과정에서 폭발을 겪었다. 기존 로켓과 다른 기술을 도입한 것이 문제가 됐다. 스타십은 보통의 로켓이 낙하산을 이용해 착륙하는 것과 달리, 로켓을 역분사해 발사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똑바로 선 채 착륙한다. 당초 예상보다 진척이 더뎌지면서 전문가들은 머스크가 제시한 시간표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내왔다.

그런 와중에 이날 시제품 SN15가 착륙에 성공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들은 머스크의 화성 이주 계획이 과장됐다고 비판하지만 (그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며 “머스크는 오는 7월 스타십의 다음 버전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사실 이번 시험도 100% 성공이라고 보긴 어렵다. 착륙 직후 SN15 밑부분에서 불길이 치솟아 관계자들이 물대포로 급히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착륙으로 개발에 한 발 더 다가갔다는 평이 나오는 만큼, 스페이스X가 해당 시제품의 단점을 순조롭게 보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스타십의 상용화 목표 시한은 2026년이다.

블루오리진이 5일(현지 시각)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2주년에 맞춰 오는 7월 20일 민간인 승객을 태운 뉴셰퍼드를 발사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뉴셰퍼드 로켓 부스터가 지상에 착륙하는 장면. /블루오리진

◇ 베이조스의 뉴셰퍼드는?…”올 7월 첫 민간인 태우고 준궤도 우주관광”

그런가하면 베이조스는 이날 첫 민간인 우주관광 계획을 발표했다. 준궤도 관광을 위한 뉴셰퍼드(로켓+캡슐) 개발을 시작한지 6년 만이다. 준궤도 우주관광이란 우주경계선으로 불리는 고도 100㎞의 카르만라인까지 올라가 수분 동안 무중력 체험을 하고 내려오는 걸 말한다.

뉴셰퍼드의 캡슐에는 한 번에 최대 6명이 탑승할 수 있다. 캡슐은 고도 76㎞ 지점에서 로켓에서 분리되며, 이후 목표 고도에 도달하면 승객들은 약 3분간 안전벨트를 풀고 무중력을 체험하면서 창밖의 우주와 지구를 구경할 수 있게 된다. 캡슐 안에선 우주복이나 헬멧을 착용할 필요가 없고, 이륙에서 착륙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15분이 소요될 예정이다.

뉴셰퍼드의 로켓은 스페이스X의 팰컨9과 마찬가지로 재사용 로켓이다. 그동안 시험 비행에서 7번까지 사용하는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높이가 18m인 이 로켓의 최고 속도는 음속의 3배다.

블루오리진은 그동안 15번의 뉴셰퍼드 시험 비행을 진행했다. 지난달 14일 최종 리허설에서는 사람이 이륙 직전과 착륙 직후에 직접 캡슐에 들어가 발사 전 통신 상태를 확인하고 착륙 후 안전하게 내리는 과정을 시연했다. 블루오리진은 이밖에도 재사용 가능한 중형 로켓인 뉴글랜의 개발을 추진중이다.

영국 BBC는 이와 관련해 “블루오리진의 발표는 2009년 민간 우주비행을 성공시킨 버진갤럭틱 이후 약 12년의 공백 끝에 우주관광이 부활했다는 증거”라며 “스페이스X 등과 함께 우주관광 시장은 더욱 더 불이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페이스X의 유인 우주선 크루드래곤이 2일 새벽 3시(현지 시각) 4개의 낙하산을 펴고 착수하고 있다. 크루드래곤은 이날 우주비행사 4명을 태우고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출발한 뒤 6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지구에 도착했다. 당초 낮에 착수할 예정이었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어 시간대를 변경했다. /스페이스X 트위터

◇ 앞서가는 머스크, 뒤쫓는 베이조스

현 시점에서 민간 우주관광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건 머스크의 스페이스X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계약까지 따낸 스페이스X는 연내 승무원을 전원 민간인으로 구성한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인스퍼레이션4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에는 억만장자 재러드 아이잭먼 등 총 4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스페이스X의 유인 우주선 크루드래곤에 탑승해 지구 저궤도에 약 2~4일 머물고 귀환할 예정이다.

스페이스X는 이밖에 세 차례의 민간 우주여행도 추진중이다. 이르면 내년 1월 민간우주관광 개발기업 액시엄스페이스와 협업해 4명의 민간인이 크루드래건을 타고 8일 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다녀오게 될 전망이다. 내년 하반기에는 우주여행사 스페이스어드벤처스를 통해 또 한번 크루드래건을 타고 4명의 민간인이 궤도 여행을 다녀온다. 마지막은 일본의 억만장자 유사쿠 마에자와의 디어문(#dearMoon) 프로젝트로, 2023년 마에자와 외에 7~10명의 여행객이 스타십을 타고 달에 다녀오는 일정이다.

스페이스X의 크루드래곤은 지구 저궤도까지 비행한다는 점에서 블루오리진의 뉴셰퍼드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뉴셰퍼드는 준궤도까지만 진입해 단 몇 분간 극미중력(microgravity)을 체험할 기회와 상공에서 지구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전부다. 스페이스X는 더 강력한 로켓이 필요하고 발사 비용도 더 드는 중장거리 사업에서 경쟁자들은 하나도 따내지 못한 민간 여행 프로젝트도 이미 4건이나 확보했다.

한때 스페이스X와 양대산맥을 이루던 블루오리진은 최근 들어 우주 발사체 시험, 궤도 수송 등에서 스페이스X에 뒤지기 시작했다. 오는 2022년 시작되는 수십억달러 규모의 미 국가안보 프로젝트에서도 스페이스X에 밀렸다.

하지만 베이조스가 머스크를 추월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베이조스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할 역량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주개발은 베이조스의 숙원사업이다. 베이조스는 어린 시절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보고 우주비행사를 꿈꾼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머스크도 베이조스의 참전을 적잖이 의식하고 있다. 블루오리진이 2019년 인터넷 위성 발사 사업 계획을 구체화했을 당시 “베이조스는 카피캣(모방자)”이라며 비꼰 일이 대표적이다. 머스크는 지난해 약 2조2400억원 규모의 로켓 프로젝트에 왜 자사는 빼고 블루오리진을 파트너로 채택했냐며 미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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