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총알' 우사인 볼트의 빈 자리를 채울 선수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지난 1일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선에서 9초80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딴 이탈리아의 마르셀 제이콥스다. 유럽 출신 선수가 올림픽 육상 100m 종목에서 우승한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29년 만의 일이다.

제이콥스는 경기 뒤 "꿈을 꾸는 것 같다"며 "어린 시절부터 올림픽 금메달을 꿈꿨지만, 정말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은메달은 9초84에 결승선을 통과한 미국의 프레드 컬리에게 돌아갔다. 동메달은 9초89로 레이스를 마친 캐나다의 안드레이 더그래스가 차지했다. 아시아 신기록(9초83)으로 준결선을 1위로 통과한 중국의 쑤빙톈은 9초98로 6위에 머물렀다.

마르셀 제이콥스(이탈리아)가 2021년 8월 1일 일본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선에서 9초80으로 우승한 뒤 환호하고 있다. 처음 경험한 올림픽 결선에서 제이컵스는 자신의 최고 기록이자 이탈리아 기록, 나아가 유럽 신기록까지 달성했다. 이탈리아 선수가 올림픽 육상 100m에서 메달을 얻은 건 이날이 처음이다. /연합뉴스

제이컵스는 원래 멀리뛰기 선수다. 2016년 이탈리아선수권에서 7m89로 우승하며 당시 육상계에 작은 파란을 일으켰다. 뒤바람이 초속 2.78m로 불어 공식 기록(초속 2m 초과하는 바람이 불면 비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8m48을 뛴 적도 있다. 개인 소셜미디어 ID도 그의 출신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크레이지 롱점퍼(CRAZY LONGJUMPER)'다.

제이콥스가 본격적으로 100m 종목에 뛰어든 건 2018년의 일이다. 그해 남자 100m에서 10초08을 뛰었다. 하지만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올해부터다. 지난 5월 이탈리아 사보나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이탈리아 신기록인 9초95를 기록했고, 올림픽 기간에도 계속해서 기록을 단축했다. 100m 예선에서 9초94로 개인 최고이자 이탈리아 신기록을 경신하더니 1일 열린 준결선에서는 9초84로 기록을 0.1초 더 줄였고, 결선에서는 9초80으로 유럽 신기록을 세우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탈리아 선수가 올림픽 육상 100m에서 메달을 얻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가 한국에서 거주할 뻔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모친 비비아나는 이탈리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베네토주 비첸차에서 미군이었던 남편과 만나 1993년 결혼하고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로 이주했었다"며 "이듬해 태어난 제이콥스가 생후 20일째에 남편이 주한미군으로 배치됐었는데 남편을 따라 한국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아들과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제이콥스는 1994년 9월 26일생이다.

이탈리아 언론조차 주목하지 않아 사실상 무명에 가깝던 제이콥스는 도쿄로 출발하기 전 "(우사인) 볼트도 없고, (도핑 규정 위반으로 선수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크리스천 콜먼도 없다. 남자 100m에 독보적인 우승 후보가 없어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며 "나는 메달을 따러 도쿄에 간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그리고 그는 볼트의 뒤를 잇는 '단거리 황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