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鑑賞)인가, 투자인가?
10대도 투자한다는 미술 시장. 예술로 감상하던 미술의 자리엔 어느새 투자의 욕망이 너울대고 있다. 소장의 가치는 환금성으로 대체되고, 작품은 자산을 불리는 재화가 됐다. 어쩌다 미술은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됐을까.
욕망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미술 시장이 존재 가치를 잃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주연화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신간 '예술, 가지다'를 통해 부의 욕망이 커지고 있는 미술 시장의 금전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미술품이 가진 감상∙장식∙사회∙역사∙미학적 가치라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올해 사상 처음 미술품 거래액 1조원대를 넘보고 있는 한국 미술 시장을 에워싼 가치와 욕망의 무게를 그는 어떻게 체감하고 있을까.
감상과 투자의 경계
-요즘 그림은 돈을 보고 구매한다는데.
"그래도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림이 좋아서, 내가 소장해서 감상하려고 산다. 그러나 요즘 그림 투자 가치가 높아지면서 투자 목적의 구매도 부쩍 늘었다. 지금은 미술품을 하나의 동기나 목적만으로 사는 경우는 드물다고 봐야 한다. 공간을 꾸미기 위해서거나, 장∙단기 투자 목적, 작품성, 미술사적 가치나 사회적 가치 등 여러 목적을 동시에 갖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쉽다면, 우리나라 미술품 구매자들의 경우 작품 감상이나 가치 구매의 비중이 외국보다 낮은 편이라는 거다. 미술품을 사서 소장하는 데도 가치 구매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미술품은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품 구매를 어떻게 인지하느냐도 중요하다. '어떤 그림이 얼마에 팔렸다'는 단순 가격 중심의 보도도 투자 성향을 부추길 여지가 있다. 물론 부가 확대되면 문화 콘텐츠도 부흥을 맞는다. 과거 작품을 찾는 수요가 늘고 이는 다시 생존 작가와 젊은 작가의 작품 구매 증가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투자적 소비가 이뤄진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이미 투자와 관계된 시장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그런 시장에 들어가 있는 거다."
경기 타도 끄떡없는 초고가 작품들
-경기 침체 여파가 미술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나?
"미술 시장도 대체로 경기 흐름을 탄다. 대중화된 시장에선 한동안 어려운 시장 전망이 예상된다. 블루칩으로 꼽힐 만한 작품도 요즘 낙찰률이 40% 정도밖에 안 된다. 무너진 수준은 아니지만 고환율에 고물가, 높은 이자로 시장 눈치를 보느라 지금 시장 상황이 좋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초고가 시장은 큰 타격이 없는 편이다. 이런 시기엔 미술 시장도 양극화를 보인다. 잘나가는 작가의 잘나가는 작품은 경기 하락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편이나, 그렇지 않은 작가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될 거다.
요즘 그림을 사는 사람들의 구매 패턴이 다르다는 것도 봐야 한다. 이들의 구매 문화는 기존 구매자들과는 다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돈 있는 젊은 구매층 때문에 시장 상황과는 별개로 초고가에 팔리는 작품들이 있다. 또 시장이 이제 글로벌화하다 보니 주목을 받은 작가에 해외 구매자까지 붙으면서 가격이 과하게 올라가기도 한다. '네가 가졌으니 나도 가져야겠다'는 일종의 '묻지마'식 구매나 상징적 구입도 많아지고 있다. 이런 구매는 일부 인기 작가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작가가 힘들어지는 약세장과 달리 움직이기도 한다."
욕망, 그리고 거품
-거품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빠지나?
"자본주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수요가 많고 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치솟게 되는 거다. 특히 미술품은 대체재가 잘 없다. 특정 작가의 작품이 잘 팔리면 여러 사람이 그 작가의 작품을 팔려고 한다.
구매 패턴에서도 투자 욕망이 읽힌다. 재판매 주기가 짧아졌다. 5년 정도던 재판매 주기가 지난 2년 사이에 3년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소장과 감상이 아닌 시세차익을 보는 재테크 수단으로 택한 구매가 활발해졌다는 의미다.
또 일단 '뜨는 작가'다 싶으면 무조건 사고 본다. 그리고 다시 프리미엄을 붙여서 옥션에서 되팔고. 예술품이 아닌 투자 대상으로 보는 욕망이 크다. '반짝' 스타로 뜬 작가의 작품을 이런 식으로 잘못 구매하게 되면 수요가 꺾이면서 거품까지 꺼지는 실패를 맛볼 수도 있다. 지나친 욕망의 끝은 좋지 않다.
미술계에 있으면서 업 다운을 각각 두 번씩 겪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미술품이 욕망의 대상인 경우를 많이 봤다. 심지어 비싼 값에 구매하고도 집에 가져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샀다는 행위 자체에 만족하는 경우다. 예술은 투자적 가치 이전에 정신적 가치가 있다. 이들은 미술품이 가진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잊고 있는 거다. 예술의 정신적 가치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미술시장의 세대교체
-신흥 컬렉터의 등장이 미술 시장 구도에도 영향을 줬을텐데.
"미술품 구매층이 과거보다 젊어졌고, 소셜미디어에 기반한 신흥 구매층이 등장하는 등 소비층이 다양해진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보다 젊은 갤러리의 등장이 먼저 아닌가 싶다. 1세대 조기 해외 유학파나 중학교때부터 외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갤러리들이 국내 시장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이 이제 2~3년 정도 됐다.
이런 젊은 갤러리를 찾아 젊은 구매자들이 모인다. 젊은 갤러리는 기성 세대와는 다른 젊은 구매자들의 취향과도 맞는다. 미술 시장도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거다."
볼륨 커지는 온라인 거래
-온라인 미술품 거래가 활발한 것 같다.
"온라인 미술 플랫폼들은 전시 정보나 경매(옥션) 낙찰가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온라인 시장이 꽤 커졌다. 미술품 경매의 경우 전체 경매의 20% 정도가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여기엔 코로나19도 한몫했다. 온라인 비대면으로 경매가 진행돼도 별 문제나 어려움 없이 이뤄지니 비용 절감까지 할 수 있는 온라인 경매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거다.
거래 가격도 꽤 올랐다. 코로나 전에는 해외 옥션 기준 2만5000달러 미만에서 주로 거래가 이뤄졌는데, 2020년 이후로는 온라인에서 10만달러 선에도 거래가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름 좀 있는 옥션들은 거래 볼륨이 더 커지고 있다. 기존 갤러리도 온라인 구매 패턴의 변화에 맞춰 가고는 있다. 하지만 미술 시장이 하이엔드를 추구하는 속성은 잃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전시 플랫폼의 변화는 작품의 변화도 이끌고 있다. 온라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다. 대체불가토큰(NFT) 미술품 같은 경우다. 별거 아닌 듯한 디지털 작품이 수백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작품이 이런 변화의 흐름을 타는 건 아니다. 설치 조각 작품 같은 경우에는 온라인 데이터 기반의 작품을 만들 수 없으니 이런 기술에서 소외된다."
인공지능(AI)과 NFT의 도전
-AI∙NFT의 등장은 기존 미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AI가 몇 분 만에 그림을 그려내고 NFT 형태의 그림이 초고가에 거래되면서 미술 시장의 패권이 신기술에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난 역사를 보면 회화가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할 거라는 데엔 의심이 없다.
19세기 초반 카메라가 나오며 사진이 등장했을 때 당시 미술계에선 '회화가 존재할 수 있겠느냐' '초상화는 사라질 거다'란 자조의 말들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사진이 영상으로 이어지고 디지털로 영상을 만들어 내는 기술 발전이 이뤄져도 회화는 살아 있지 않나. 사진은 이내 순수 사진, 기록 사진, 상업 사진 등으로 세분화되면서 기존 회화와 함께 같이 공존했다.
AI나 NFT가 등장한 지금보다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 미술계 충격은 더 컸다. 결국 AI 미술과 NFT도 기존 회화와 함께 공존하며 상업적으로든, 예술쪽으로든 나름의 영역으로 세분화하지 않을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