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한 엔터테인먼트사는 소속 아이돌을 위한 마케팅 전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K-POP의 글로벌 위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한국 연예계에서의 경쟁 또한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기존 방식대로 막연하게 성공에 대한 느낌만으로 홍보마케팅을 밀어붙이기에는 부담도 컸다.

고심 끝에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데이터 분석 및 기술개발 전문가인 노성산 샌트박스네트워크 이사를 찾았다. 노 이사는 2달여간 유튜브를 분석한 뒤 채널 운영 전략, 팬들이 선호하는 카테고리, 클릭률을 높이는 섬네일 전략, 콘텐츠 개선 방향 등을 컨설팅했다.

노성산 샌드박스네트워크 이사. /샌드박스네트워크 제공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실제로 유튜브 조회 수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바닥을 맴돌았는데 갑자기 상승세로 치솟았다. 월평균 조회 수가 2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그는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다. 계약상 아티스트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컨설팅을 제공한 지 5개월 만에 해당 아티스트가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콘텐츠 테크’(Contents Tech) 분야 최고 전문가다. 국내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월 140만개 동영상, 월 500억 조회 수, 상위 2만개 채널에 대한 모니터링 등을 총괄한다. 한마디로 콘텐츠와 미디어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를 활용해 대중의 생각과 트렌드를 읽는 일을 한다.

현재 650팀 700개 채널 크리에이터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컨설팅을 통해 1년 사이 구독자가 80만명이나 늘어난 사례도 있다. 그는 “콘텐츠의 경쟁력을 위해 예전처럼 느낌이나 촉, 감각에 의존하는 방식에 더해 데이터를 추가해서 검증하기 때문에 실패를 미리 걸러낼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0월 말에는 ‘뉴미디어 트렌드 2023′이라는 책을 냈다. 새로운 시장을 폭발시킬 숨겨진 대중의 니즈를 꼼꼼하게 다뤘다. 이보다 앞서 한국 유튜브 시장 전체를 볼 수 있는 미디어 인사이트 플랫폼(MIP, Media Insight Platform) 솔루션도 개발했다. 여기에는 한국 콘텐츠 랭킹, 조회 수 급증 채널 자동 추출, 경쟁 채널 비교분석 등 남다른 경쟁력이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노성산 샌드박스네트워크 이사가 크리에이터 입문자들을 위해 강의하는 모습. /샌드박스네트워크 제공

-유튜브 비즈니스의 매력은 무엇인가.

“세상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것이 콘텐츠이며, 모든 콘텐츠의 트렌드를 담는 곳이 바로 유튜브다. 유튜브는 그저 TV를 대체한 동영상 플랫폼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세상 모든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세상의 축약판이다.

5년 전만 해도 크리에이터를 영상을 편집해서 업로드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 이제 크리에이터는 그 자체가 지적재산권(IP)이 돼 가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팬덤 비즈니스로 확장하는 중이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플랫폼이 있지만, 크리에이터의 팬덤화가 가장 명확하게 발현되는 곳이 바로 유튜브다. 팬덤의 규모가 작든 크든 간에 자신만의 팬덤을 가진 사람이 산업을 리드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숨겨진 대중의 요구는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대중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변화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펜데믹 경험 때문에 지금은 펜데믹 이전과는 조금씩 다른 형태로 변형돼 욕구가 나타나고 있다.

먼저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니즈가 많다. 이를 가장 잘 반영하는 트렌드가 바로 ‘팝업스토어’다. 서울 성수동에만 한 달에만 수십 개의 팝업스토어가 생기고 사라지고를 반복하고 있다.

또 경기가 위축되면서 다시 ‘짠테크’ 시대가 오고 있다. 몇 년 전에 업로드됐던 ‘만원으로 반찬 만들기’ 콘텐츠도 조회 수가 다시 올랐고, 기프티콘으로 생활하는 브이로그 같은 채널들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편의점 할인과 같은 키워드 검색량도 확 늘었다.

마지막으로 ‘싱거움’이다. 지난 몇 년간 부의 격차, 세대와 남녀 갈등, 그리고 전쟁까지 겹치면서 대중들이 자극적인 환경에 장기간 노출이 됐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잔잔하고, 조용한 싱거움을 찾는 대중이 점차 늘고 있다.”

-통계적으로 10대들의 선택은 어떤 특징이 있나.

“10대라고 해서 기성세대와 다른 패턴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는 추천 알고리즘이 워낙 고도화돼 있어 사람마다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준다. 이 알고리즘 때문에 취향을 기반으로 ‘파편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10대뿐 아니라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다. 파편화는 개성의 존중이라는 면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필터 버블이라는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10대들의 문해력이다. 예전에는 전 국민이 하나의 문화와 규범을 배우고 자랐지만, 지금은 어릴 때부터 파편화된 세상에서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다보니 생긴 현상이다. 앞으로는 ‘당연하다’라는 것은 없을 것 같다. 문화 취향적인 다양성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의 가치가 더 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성산 샌드박스네트워크 이사가 금융업계 임직원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모습. /샌드박스네트워크 제공

-’극사실주의’ 콘텐츠가 인기라고 들었다.

“책에도 썼지만, 극사실주의는 있는 것을 그대로 담아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해학과 비판을 담은 블랙코미디가 대세였다면, 지금의 극사실주의 콘텐츠는 이를 우회적으로 건드리되 직접적인 비난을 하지 않고 시청자에게 위임하는 한 단계 수위 낮은 코미디라고 볼 수 있다. 그레이 코미디라 이름을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정답이 없어진 사회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을 공격하는 것을 시청자들이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파편화로 인한 사회적 다양성과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문화, 그리고 앞서 얘기한 싱거운 맛을 추구하는 것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5060 ‘리본 세대’를 위한 슬기로운 유튜브 생활을 조언한다면.

“유튜브 플랫폼은 내가 사용자이면서도 공급자가 될 수 있다. 특히 리본 세대일수록 쌓아온 이야기와 전문성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공급자인 크리에이터를 도전해보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촬영이나 편집에 부담을 갖는 분들이 많은데, 제일 중요한 건 내가 가진 콘텐츠가 누구한테 가장 잘 먹힐지 타깃을 분명하게 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동년배가 아니더라도 20대를 팬덤으로 가지는 리본 세대 크리에이터도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편향된 정보만 습득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유튜브 설정에서 시청 기록을 초기화하고, 기존에 보지 않았던 새로운 콘텐츠에 도전하는 것을 추천한다. 편견이 없다면, 유튜브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매력적인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130조원 규모의 새로운 경제 생태계 속에서 크리에이터가 가야 할 방향은.

“크리에이터 시장은 이제 막 태동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 개인이 만든 콘텐츠를 과연 사람들이 볼까’라고 의심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어느덧 개인이 팬덤을 거느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팬덤은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강력한 무기임은 틀림없지만, 반대로 실수했을 때는 안티(anti)로 변한다. 매일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고민하는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중요하겠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기업을 운영하듯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