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가 동력으로 등장한 한국미술시장은 피크와 거품 붕괴의 시점을 피해갈 수 있을까.

유사 이래 우리 미술계의 가장 큰 축제였던 프리즈/키아프(Frieze Seoul/Kiaf(한국국제아트페어))가 막을 내렸습니다. 미술계는 흥행에 들떠 있고,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미술 한류를 얘기하고, 서울이 아시아 미술의 맹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절실한 것은 자아도취가 아니라 냉정한 자기성찰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미술시장 붐은 건강한가, 지속 가능한가. K아트가 월드 클래스가 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등의 주제로 미술 시장 전문가 김순응의 조언을 들어봤습니다. 김순응은 하나은행 뱅커 출신으로 서울옥션과 K옥션의 대표를 거친 후 현재 김순응 아트컴퍼니의 대표로 있습니다. 파티의 흥을 깬다는 비난은 감수한 채 이어진 강도 높은 쓴 소리는 귀 기울여볼 만합니다.

#외국 갤러리의 ‘끔찍한 인물화’ VS 한국 갤러리의 ‘예쁘고 장식적인 그림’

-우선 이번 행사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어땠는지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외국 갤러리는 ‘끔찍한’ 인물작품이 대세였고 한국 갤러리는 ‘예쁘고 장식적인’ 작품이 대세였습니다. 끔찍함의 절정은 장외에서 크리스티가 연 <프란시스 베이컨과 아드리안 게니> 2인 전이었지요. 동성애자이자 어려서 채찍질을 당하고 산 베이컨(1909-1992)은 삶의 고통과 비극을 인물을 통해서 표현한 작가입니다.

베이컨은 그의 <루치안 프로이트에 관한 세 개의 연구(습작) 1969>이 2013년에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4천 2백만 달러에 팔린 미술시장의 대세화가입니다. 아드리안 게니(1977-) 역시 베이컨과 헷갈릴 정도로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인물을 그리는 루마니아 작가이며 2011년, 34세에 그의 작품<Pie Fight Interior 12>가 크리스티 홍콩에서 1천 30만 달러에 팔린 당대 최고의 작가입니다.

두 사람은 고흐를 좋아합니다. 베이컨은 <반고흐에게 바치는 경의(A Homage to Van Gogh)를 그렸고 게니는 고흐의 자화상이나 해바라기 등을 카피했습니다. 고흐는 인상파 화가들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때 세기의 우울에 가득한 인물들을 그렸습니다.

그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에서 조차 짐승 취급받은 그는 목회자로서 실패했고, 화가로서도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생계는 동생에게 의존했고, 그렇게 갈구했건만 단 한 번도 여성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마이너, 루저였습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요.

마가릿 대처는 베이컨을 가리켜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 습작> 같은 끔찍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고 했고, 베이컨은 정말 무서운 것은 내 그림이 아니라 대처 같은 정치인들이 만든 세상이라고 답했습니다.”

인간의 형상이 빠진 미술은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인물 없이 K미술이 월드 클래스가 될 수 있을까.

-끔찍한 인물을 그리는 화가로 또 누가 있습니까?

“1,240만 달러라는 생존여성 최고의 가격에 팔린 제니 사빌(Jenny Saville, 1970, 영국) 역시 끔찍한 인물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요즘 젊은 작가 중 가장 비싸게 팔리는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 1984, 가나)는 손가락으로 흑인 인물화를 거칠게 그리는 작가지요. 2021년에 그의 작품 ‘Hands Up’이 34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230만 달러의 옥션가격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스타작가 지아 아일리(1979)의 작품에도 무시무시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왜 우리나라에는 인물이나 끔찍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드뭅니까?

“인물을 그리지 않는 건 안 팔리기 때문입니다. 오치균이라는 작가는 인물을 정말 잘 그렸습니다. 그의 뉴욕 시절 초기 작품들 중에는 자기 누드나 가족 초상이 많습니다. 저는 오 작가에게 “오 작가는 인물 그림에 출중한데 왜 인물을 안 그리십니까.” 물은 적이 있어요.

그는 “인물 그림 아무도 안 사요. 감 같은, 예쁜 그림만 찾아요. 김 대표가 팔아주시면 인물 많이 그릴게요.”라고 하더군요. 안 팔리는 작품은 작가들이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시장이 없으면 예술도 없고 시장이 죽으면 예술도 죽어요. 예술가의 삶도 물적 토대위에 설 수밖에 없잖아요.”

-왜 한국에서는 인물화가 안 팔릴까요?

“저는 유교나 기독교의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철학이나 종교가 없다고 얘기하는 학자들이 있지요. 모두 수입해서 씁니다. 수입한 것들을 진리처럼 받듭니다. 철학이나 종교는 우리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야 마땅하고 삶의 양태가 바뀌면서 변화해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변화를 변절이나 이단으로 치부합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기억조차 하지 않는 주자가례를 아직도 고집하고, 기독교도들은 인물화를 집에 거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금기시합니다. 기독교도인 서양 가정에서는 인물화를 많이 걸고, 인간의 형상을 절대 금기시하는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서도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고흐, 고갱, 루치안 프로이트, 프란시스 베이컨을 사들이고 다빈치의 <구세주>를 사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예술에도 종교적인 잣대를 들이댑니다.

# 인물화 없이 K미술 월드 클래스 될 수 없어

우리 가정에서 용납하는 인물화는 조상이나 가족에 한정됩니다. 여자의 벌거벗은 몸을 그린 그림을 어떻게 집안에 겁니까. 유교문화의 산물이지요. 그런데 인간의 궁극적인 연구 대상은 인간입니다. 모든 문학, 인문학, 예술의 첫 번째 대상은 인간이지요. 세계 미술사를 보십시오. 시대를 불문하고 주류는 인물화였고 인물화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만 따져도 조각이나 그림이나 위대한 작가는 모두 인물을 한 사람들입니다. 근대의 밀레, 고흐, 고갱, 피카소, 자코메티, 모딜리아니, 베이컨, 프로이트 등등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대가들의 관심은 인물이었습니다. 동양의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형상이 빠진 미술은 아마도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할 겁니다. 인물 없이 K미술이 월드 클래스가 될 수 있을까요.”

박수근, 유동, 1963, 캔버스에 유채, 96.6x130.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우리나라 국민화가들인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도 인물을 그리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들의 인물은 감정이 배제된, 정물화 된, 풍경의 일부입니다. 리얼리티가 부족하지요. 우리나라에도 1980년 대,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진보적인 미술인들이 주도하여 사회참여,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민중미술’이라는 장르가 있었습니다. 형식은 사실적은 인물화를 내세웠습니다. 이 운동이야말로 심미주의에 반발하여 시대정신을 반영한, 현실참여적인, 한국의 독창적인 ‘리얼리즘’ 미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인물화에 대한 수요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뿌리를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재조명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우리 미술계에서 민중미술을 얘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왜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세 작가들은 인물을 끔찍하게 표현합니까?

“삶은 원래 끔찍했고 점점 더 끔찍해지기 때문에 그림도 갈수록 더 끔찍해지고 이런 작품들이 공감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 우리의 삶이 단색화처럼 고요하고 단조롭고, 추상화처럼 난해하고 모호하고, 요즘 MZ세대가 열광하는 몇몇 젊은 작가들 그림처럼 밝고 화사하고 장식적이기만 하던가요.

이 시대에 우리가 서정시만 써야할까요.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예쁜 그림도 있어야겠지만 그게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게 바로 삶과 유리된 미술이지요.

세계인이 K팝에 열광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음악은 아름답고 현란한 목소리와 춤 뒤에 청년들의 시대적 암울함이 담겨있기 때문에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겁니다. 그들의 노래나 뮤직비디오를 찬찬히 살펴보세요. BTS는 학교폭력, N포세대, 열정 페이 등과 같은 그들의 절망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래와 영상은 ‘피와 땀과 눈물’로 젖어 있습니다.

왜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끔찍한 영화나 드라마에 세계인들이 열광합니까. 이들이 담고 있는 것은 시대의 부조리, 약육강식, 자본주의의 잔혹함, 불평등, 빈부격차, 계급갈등, 차별, 폭력, 비극, 슬픔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서바이벌 게임, 데스 게임 아닌가요.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자본주의는 이런 질서를 가장 잘 반영한 시스템입니다. 불평등한 질서에서 평등을 찾아야 하는 데에 인간의 원초적인 부조리가, 비극이 존재합니다.”

프리즈는 초대박을 쳤고 키아프는 매년 발표하던 판매액을 밝히지 않았다./사진=뉴스1

-작품 판매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프리즈는 대성공이었다고 하던데, 어떤 작품들이 많이 팔렸나요?

“우려했던 대로 프리즈는 초대박을 쳤고 키아프는 매년 발표하던 판매액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외국 갤러리들의 지배적인 반응은 이렇게 많이 팔릴 줄 몰랐다, 이런 작품들도 팔릴 줄 몰랐다, 는 것입니다.

한국 컬렉터들의 눈(안목)이나 취향은 세계 시장과는 물론 다릅니다. 그 차이는 해외 갤러리들의 작가 구성과 우리의 작가 구성의 차이만큼 확연합니다. 이런 차이는 다름이지 수준의 차이는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어느 일간지에서 해외 경매사의 한 관계자가 말했다고 썼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작가 이름(유명세)만 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피카소의 작품이라고 모두가 완성도가 높을 수는 없습니다. 작품의 질을 판단하는 것이 안목입니다. 외국 갤러리들은 우리의 이러한 경향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프리즈에도 이름 높은 작가들의 작품 중에 질이 떨어지는 것들이 꽤 눈에 띄었습니다. 그중에는 해외 유명 아트 페어 걸렸다가 팔리지 않은 작품들도 있었고요.

“이건 해외 갤러리스트들도 지적하고 우려하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작품들이 이번에 많이 팔렸지요. 잘 팔렸기 때문에 내년에도 달라지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한국인의 취향을 잘 몰라 다양한 작품을 보여줬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런 걸까요?

에콰벨라는 아트바젤에서도 팔지 못한 바스키아의 대작 <오리, Duck> 를 900만 달러(약 124억 원)에 팔았다고 자랑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림을 눈으로 사지 않고 귀로 산다고 말하는 외국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우리 미술계에서는 우리 컬렉터들이 프리즈의 ‘호갱’이 될 거라는 우려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 컬렉터들의 깊지 않은 주머니를 터는 진공청소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지요.

해외 유명 아트 페어나 갤러리들이 우리나라를 찾을수록 우리나라 작가, 갤러리들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세계 미술시장도 약육강식이 지배합니다.”

7만 명이 넘는 인원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를 찾았다. 주최측은 관람객의 절반 정도가 2030세대로 보고 있다./사진=뉴스1

-구겐하임 리처드 암스트롱 관장은 20/30이 미술에 열광하는 것을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정상은 아니지요. 병적인 현상입니다. 그들의 좌절감, 절망의 분출이지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집을 살 수도 자녀를 낳아서 교육시키기도 어려운 환경에서 여러 가지(N) 기본적인 욕구를 포기해야 하는 청년들이 미술시장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벼락거지’를 면하기 위해 ‘영끌’해서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명품 시장에 진입했지만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미술시장에서도 그들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정치인들도 장사꾼들도 청년을 팔고 그들의 좌절을 이용해서 잇속을 챙기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모든 자산시장이 그렇지만 미술시장에도 거품이 절정에 이를 무렵에는 온갖 감언이설이 난무합니다. 장사꾼들의 놀음에 언론이 가세해서 그림을 사면 벼락부자가 되고 안사면 벼락거지가 될 것처럼 선동합니다.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명품이 그랬습니다.”

-젊은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미술 시장의 상술에 휘둘리나요?

“그들이 공감할 수 없는 작품을 사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 앞 다투어 SNS로 퍼뜨리죠. 이런 것들이 경쟁적으로 벌어지면 대부분은 이성을 잃습니다. FOMO(Fear Of Missing Out)에, 밴드웨건(Bandwagon) 효과,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더해지면 사회적 병리현상이 나타납니다.

나만 벼락거지가 될 것 같고 그림 값이 올라간다고 하면 올라간다는 기사와 말만 눈에 보이고 귀에 들어옵니다. 이는 곧 패닉 바잉(Panic buying)으로 이어져서 거품을 일으킵니다. 거품 속에서는 거품이 안 보입니다. 불장이 꺾이면 갑자기 정신이 들어 불안감이 엄습하고 공포가 커지면서 바닥에 이를 무렵 집단적 패닉 셀링을 하고 이때는 회복하기 어려운 경제적인 손실을 보게 됩니다.

튤립 이전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모든 투기역사의 시작과 종말이 똑같습니다. 인간은 너무 어리석고 약하여 탐욕과 공포 사이를 오가며 실패를 반복하지요.

YOLO(You only live once)니,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니, 보복소비(Revenge spending)니 하는 것도 절망의 소산입니다. 우리는 한번 살지만 그 한번은 하루나 1년이 아니라 100년입니다. 재정적인 독립은 모두의 꿈이지만 멀고, 일찍 은퇴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막연합니다. 소비에는 자기 예산과 효용 가치와 미래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앞서야겠지요.”

관람객들이 애쿼밸라 갤러리의 600억 원 이상인 피카소의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요즘에는 아트펀드 얘기도 많이 나오고 조각구매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호황이 막바지에 이르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2000년 대 초반에도 그랬고 중반에도 그랬지요. 저는 금융인 출신입니다. 2001년에 서울옥션 대표로 미술계에 들어오면서 미술투자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앞으로 미술투자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일간지에 쓰고 강연을 하고 다녔지요. 당시 미술인들은 김순응이라는 ‘천민자본주의자’가 지고지순한 미술을 오염시킨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습니다.

2002년도에 제가 몸담았던 은행과 아트펀드를 만들어 하루아침에 모집을 끝냈다가 아직은 아니다 싶어 해체했지요. 이게 기사화되고 소문나면서 여기저기서 아트펀드에 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아트펀드, 조각투자에 관해 세계적으로 붐이 인 것은 2005-6년 미술시장이 매우 핫할 때였습니다.

#미술도 투자 원리 같아… 쌀 때 사서 비싸게 팔아야

저는 이때 우리나라에서 아트펀드는 시기상조이고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영국 ‘파인 아트펀드’의 필립 호프만 회장, 홍콩 크리스티의 에릭 창, 소더비의 전문가등을 불러 <Global Art Fund Conference>를 열었지요. 웨스틴 조선, 그랜드 인터콘 그랜드 볼룸에서 각각 한 번씩 열었는데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청중들은 복도를 메울 정도로 들어찼고 신문, 방송 기자들은 모두 왔습니다.

저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너무 작고 인프라가 미흡하여 아트펀드는 절대 실패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외에도 아트펀드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제 얘기를 거꾸로 받아들이더군요. 아트펀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결국은 모두 망했습니다. 이를 주도했던 몇 갤러리들은 파산을 했지요.

모든 투자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꾸로 하지요.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미술 등 모든 자산 시장에서 그럽니다. 그래서 소문은 무성한데 실제 돈을 번 사람은 보기 어렵습니다.”

-구겐하임 관장은 ‘미술시장 과열, 미술관과 갤러리 난립을 경계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과열입니다. 우리만 쉬쉬하지 해외 관계자들도 우리 미술시장이 과열이라는 말은 이구동성으로 합니다. 이미 피크는 지났다고, 아니면 지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물가상승률, 경제성장률, 금리, 통화량, 고용지수, 환율 같은 거시경제 지표를 거스를 수 있는 자산시장은 없습니다.

다만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시차가 있을 뿐입니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은 자연의 섭리이자 경제의 섭리입니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고 계곡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산은 시작됩니다.

불황이나 호황은 예측이 힘들어 손실을 피하기도 이익을 보기도 어렵습니다. 1929년의 세계대공황도 하루아침에 찾아왔고 우리가 최근에 겪은 IMF 위기, 닷컴버블 붕괴, 금융위기, 코로나 위기도 느닷없이 찾아와서 대비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코로나 와중에 갑자기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시장이 이렇게 벼락 치듯 좋아졌다가 꺾일지 전문가들조차도 예측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호황에 재산을 불리기도 불황에 자산 가치를 지키기도 어렵습니다.

#미술품은 환금성이 부동산보다도 낮아

늘 그래왔듯이 미술시장 거품도 하루아침에 꺼질 수 있습니다. 미술품은 환금성이 부동산보다도 낮습니다. 미술시장은 1-2년의 짧은 호황과 5-10여 년의 긴 불황의 사이클을 반복해왔습니다. 지금의 호황은 아무도 예측 못한 지난봄에 불현듯 찾아와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여기저기서 경계경보가 울리고 있습니다.

미술투자는 오랜 시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미술시장의 이런 특성 때문에 미술투자는 오랜 시간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전문지식, 열정, 정보력, 경험, 자금력에서 오지요. 그래서 미술투자로 돈을 벌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트펀드의 만기가 3-5년인데 지금 같은 피크에 만들어 그림을 산다면 가장 깊은 바닥에 만기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2005-6년의 아트펀드가 딱 그랬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조각투자는 심지어 1년 전후의 짧은 기간에 수익을 낼 것처럼 홍보하는 곳도 많더군요. 그렇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작품을 끊임없이 구하는 것은 신도 할 수 없습니다. 미술품은 거래비용이 높기 때문에 2-3배는 올라야 겨우 본전을 건질 수도 있습니다. 불황기에는 가격불문하고 팔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투자한 사람들은 불황기를 맞으면 어쩌겠습니까. 긴 불황의 터널을 견디고 호황기를 맞이한다 해도 내가 산 작품이 오를 가능성은 많지 않습니다. 유행이나 추세가 바뀌기 때문에 옛날에 비싸게 산 작품들이 가격을 회복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미술관과 갤러리 난립은 거품기에는 늘 겪는 일이지요. 경기가 꺾이면 생겨난 속도로 문을 닫습니다. 이 현상 역시 거품과 운명을 같이 합니다.”

-테이트의 마리아 볼쇼 관장은 한국 미술에 대해 여러 가지 뼈아픈 지적을 많이 했더군요. 우리 미술의 세대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암시하는 듯하던데요.

“”한국은 아름다움(미술)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이 크다. 다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너비다. 폭이 넓어야 오래 갈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미술에 대한 갈증이 돈에 대한 갈증의 외교적 수사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폭은 작가나 작품의 다양성이겠지요.

우리미술은 오랫동안 단색화, 추상의 과거에 갇혀있습니다. 물론 과거를 돌아보고 평가가 미흡했던 부분은 재평가, 재조명하고 세상에 알려야지요. 하지만 거기 갇혀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새 작가가 지속 발굴돼야 건강한 시장이다”라고도 얘기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유명 갤러리들도 한국 미술에 관한한은 과거에 갇혀있습니다. 그건 그 작가들이 잘 팔리고 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미술에는 그것을 만드는 기술보다는 독창성, 그 안에 담는 컨텐츠(정서, 정신, 영혼 등)가 중요하다.

#과거 미술에 줄서기 보다 미래로 호기심 향해야

새 작가를 발굴하는 것은 돈과 시간을 쓰는 일이고 모험입니다. 기업이고 갤러리고 큰 조직은 모험을 기피합니다. 모험은, 기득권을 누릴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젊은이, 스타트업이 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지요.

이번 프리즈의 메인섹션에 참여한 10개 갤러리 중 5개가 10년 미만의, 심지어는 4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30 대 초반의 오너가 참여했다는 것은 지극히 보수적인 우리나라 미술계에서는 매우 획기적인 일입니다.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로 참신하고 젊은 사람을 내세워 우리가 스스로는 할 수 없는 한국미술의 세대교체를 이루게 했다는 점은 프리즈에게 감사할 일이지요. 역시 이들 5개 갤러리가 선보인 젊은 작가들은 기존의 거대 갤러리들의 작가들과는 달랐습니다. 원래 작가와 갤러리스트와 컬렉터, 비평가 들은 비슷한 연배로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 같이 커가야 합니다.

MZ세대가 과거의 미술 앞에 줄을 서고 그 앞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고 여기에 또래의 많은 수가 ‘좋아요’로 열광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들의 호기심과 갈증은 미래로 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중문화와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현재 K컬처의 흐름이 막강한데, 한국 미술의 미래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인은 문화적 역량이 뛰어납니다. 요즘 피아니스트 임윤찬 등의 K클래식도 대단하던데 미술도 그런 때가 오지 않을까요. 팝이건 클래식이건, 물론 작곡은 다르지만, 빼어난 기술(몸이나 악기를 다루는 스킬)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음악은 스포츠처럼 어려서부터의 혹독한 훈련으로 세계 제일이 될 수 있습니다.

김순응 김순응아트컴퍼니 대표

전국의 그 많은 음악학원과 좋은 음악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교육열은 미술도 음악 못지않습니다. 그러나 미술은 다릅니다. 미술에는 그것을 만드는 기술보다는 독창성, 그 안에 담는 콘텐츠(정서, 정신, 영혼 등)가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에 가깝겠지요.

잘못하면 손이 콘텐츠를 가두고 억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나라 미술의 주입식 교육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할 겁니다. 혹독한 훈련(조기교육)은 독창성과 자유로운 영혼에 장애가 될 수 있겠지요. 위대한 미술가 중에는 독학자가 많습니다.

K미술이 세계를 제패하여 MZ세대 작가의 작품 한 점이 수십 억 원에 팔리는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미술인들의 냉철한 반성과 치밀한 전략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