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수입 항공 부품의 관세 감면율이 단계적으로 낮아지면서 국내 항공사들이 수입해오는 항공기 부품에 막대한 관세가 부과된다. 5년 뒤 관세 면제가 완전히 사라질 경우 항공사들이 매년 부담하게 될 비용은 최대 1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2015년에 항공정비산업 육성방안을 내놓고 항공부품 관세 면제를 추진해왔으나 5년 넘게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항공서비스주식회사(KAEMS) 정비사들이 항공기를 정비하고 있다. /김우영 기자

◇ 내년부터 항공기 부품 관세 사라진다

5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현재 항공기 수리를 위해 국내에 수입되는 항공 부품은 관세가 100% 면제된다. 지난 2001년 만들어진 관세법 제 89조(세율불균형물품의 면세)에 따른 것이다. 관세법 제 89조는 항공기 부품과 원재료에 대한 세율이 완제품 세율보다 높아지는 역관세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제는 내년부터 관세법 제 89조의 일몰 조치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미국·유럽연합(EU)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따라 항공기 부품에 대한 관세 면제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국내법을 통한 면세 특례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에 오는 2022년 항공기 부품에 대한 관세 감면율은 기존 100%에서 80%로 낮아진다. 이후 매년 20%씩 낮아져 오는 2026년에는 면세가 완전히 사라진다.

기간~2021.12.31~2022.12.31~2023.12.31~2024.12.31~2025.12.31
관세 감면율100%80%60%40%20%

그러나 항공업계는 항공 부품에 대한 FTA 특혜 관세를 기대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FTA 관세 면제를 받기 위해선 협정 체결 국가에서 해당 부품을 생산했다는 '원산지 증명서'가 필요하지만, 보잉과 에어버스 등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들은 이 증명서를 취급하지 않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원산지 증명 절차도 복잡할 뿐더러 증명서를 요구하는 국가가 없다보니 제작사 입장에선 굳이 증명서를 만들 필요성을 못 느끼고 국내 항공사들의 요구도 묵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7년 기준 항공 부품 FTA 면세 활용률은 약 15%에 불과했는데, 같은 기간 국내 전체산업 평균 FTA 활용률은 60% 중반대였다.

◇ 최대 1500억원 관세 부담… "범정부 차원 접근 필요"

관세 면제 철폐에 따른 비용은 항공사와 항공정비업체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항공 부품에 대한 관세 면제가 완전히 사라질 경우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 등 국적 항공사들이 부담할 비용은 약 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이후 항공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부품 수입액이 늘어나면 부담액은 최대 15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항공 정비 외주화 추세도 심화될 수 있다. 싱가포르 등 제 3국의 항공 정비 업체에서 신규 부품을 장착하고 들어올 경우 관세가 발생하지 않지만, 국내 정비 업체를 통해 신규 부품을 조달할 경우 관세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항공사들은 전체 항공 정비 비용의 절반에 달하는 1조 2000억원을 매년 싱가포르 등 해외 업체에 지급하고 있는데, 이 비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픽=박길우

항공업계는 원산지 증명 없이도 관세 면제가 가능한 세계무역기구(WTO) 민간항공기교역협정(TCA) 가입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정부가 난색을 표하는 모양새다. TCA가 정부의 항공산업 연구개발(R&D) 지원과 국내 항공기 우선 도입 장려 정책 시행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서 추진 중인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사업과 국산 관용헬기 도입 사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항공업계의 불만은 관세 부과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가 지난 2015년 '항공정비 육성방안'을 발표하고 "항공정비(MRO) 합자법인 등에 대해 항공부품 관세 면제 혜택을 부여하겠다"고 밝혔지만,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여전히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항공 부품 관세 문제도 업계가 정부에 수년 전부터 대책을 요구해왔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재부는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관세법 89조의 연장을 반대하고 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보조금 지원 금지를 이유로 TCA 가입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코로나19로 항공사들이 궤멸하기 직전인데 정부는 부처간 이견을 핑계로 대책 마련을 미루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법 개정이든 TCA 가입이든 수개월 이상 시간이 드는 만큼 올해 안에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항공사들의 고통만 길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