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전남해상풍력1단지에 있는 해상 풍력 발전기./이인아 기자

지난 9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 한운리에 있는 자은고교 선착장. 작은 요트를 타고 양식장이 빼곡한 바다를 50분가량 달리자 거대한 바람개비 10대가 2열로 늘어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선착장에서 북서쪽으로 9㎞쯤 떨어진 이 곳은 바닷바람으로 전기를 만들어 육지로 보내는 전남해상풍력1단지(전남1)다.

지난해 12월 상업 운전을 시작한 '전남1'은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 주도 해상 풍력 프로젝트다. SK이노베이션 E&S, 덴마크 에너지 투자 회사 CIP가 각각 지분 51%, 49%를 출자해 합작법인 전남해상풍력㈜을 설립했다. 약 9000억원을 들여 1기당 9.6MW(메가와트)급 해상 풍력 발전기 10기를 설치했다. 전체 설비용량은 96MW 규모다.

그래픽=손민균

풍력 발전기 높이는 블레이드(날개)가 하늘로 가장 높게 솟았을 때 기준으로 해수면으로부터 총 227m 정도다. 눈으로 보이는 부분만 63빌딩(250m)과 거의 맞먹는다. 해수면 아래로도 하부 구조물이 40~60m 더 박혀 있다. 블레이드 1개 길이는 97m, 무게는 44톤(t)이다. 바닷속에 꽂힌 타워(기둥)의 무게는 600t, 타워 최상단에 핵심 부품이 들어 있는 심장 격인 나셀은 520t에 달한다. 타워와 나셀의 무게만 합쳐도 1000t이 훌쩍 넘는다.

육중한 날개가 시끄럽게 돌아갈 것이란 예상과 달리 가까이 다가가도 파도 소리만 거셌다. 멀지 않은 곳에 닻자망(그물의 양쪽 끝에 닻을 고정해 그물 틀을 수직으로 세워, 조류의 흐름을 이용해 조업하는 방식) 어선도 있었다. 해상 풍력 단지 인근에서는 소음 때문에 물고기가 살지 못하고 닻자망처럼 고정식 어구를 이용한 조업도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제기돼 왔지만 이날 직접 본 모습은 이런 우려와는 거리가 있었다.

전남1은 풍력 발전기 타워와 하부 구조물, 송전 케이블 등 주요 기자재와 설치 장비의 약 75%를 국내 기업과 협력해 제작한 국산화 장비가 적용됐다. 특히 국내 해상 풍력 가운데 처음으로 모노파일 방식의 하부 구조물을 적용했다. 기존 자켓 타입보다 비용이 싸지만, 지반 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동안 위험을 감수하고 시도한 곳이 없었다. 전남1에서 모노파일 적용에 성공한 이후 다른 해상 풍력 개발사들도 이 방식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남해상풍력단지

날개는 1분에 9바퀴, 초속 12m(12m/sec)의 바람이 불 때 최대 출력을 내도록 설계됐다. 나무의 큰 가지가 흔들릴 정도의 제법 강한 바람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힘을 낸다. 태풍 등으로 바람이 더 거세져 초속 28m에 이르면 안전을 위해 자동으로 회전을 멈춘다. 날개 회전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발전기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은 언제 어떻게 불지 모른다. 실제 날개가 도는 속도는 제각각이었고, 아예 멈춘 것도 있었다. 이는 재생에너지의 최대 단점인 간헐성과 맞닿아 있다. 날씨,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해 전력 공급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 전남1의 이용률(설비용량을 기준으로 실제로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비율)은 30%대 초·중반인데 시간대와 계절에 따라 편차가 크다. 새벽 시간엔 이용률이 60%대까지 오르고, 겨울철에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인다.

반대로 태양광 발전은 낮 시간, 여름에 이용률이 높다. 정부의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추진으로 전남 지역에 막대한 전력 수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두 재생에너지의 상호 보완적 역할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다만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줄이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생산한 전력을 저장할 대규모 배터리 에너지 저장 장치(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 구축이 필요하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대전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해상 풍력 인프라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삼면이 바다인 이점을 살리려는 것이다. 해상 풍력은 육상 풍력보다 발전 효율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추진되면 전남 지역에 6.3GW(기가와트) 규모의 추가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대형 원전 4~5기 분량으로 지난해 호남 지역 전체 전력 수요(약 5GW)를 뛰어넘는다.

김진철 SK이노베이션 E&S 부사장이 9일 전남해상풍력1단지에서 설명 중이다./한국풍력산업협회 제공

전남1을 성공적으로 가동한 SK이노베이션 E&S와 CIP는 전남2·3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내년 말부터 2단지(399MW)와 3단지(399MW)를 추가로 건설해 2031년까지 총 900MW에 가까운 대규모 해상 풍력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1·2·3단지를 합하면 현재 전남1(96MW)의 약 9배에 달한다. 대형 원전 1기 설비용량(1.4GW 기준)의 약 64%에 해당하는 규모다.

본격적인 사업 추진은 4분기 해상 풍력 고정가격계약 경쟁입찰에 참여한 뒤 입찰 결과에 따라 진행될 예정이다. 관건은 사업비다. SK이노베이션 E&S는 해상 풍력 개발 비용이 설비용량 500MW 기준 4조5000억원 수준까지 오른 것으로 추산한다. 금리가 높아져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조달 여건이 악화된 데다 원자재 가격 상승도 부담이다. 환율도 변수다.

김진철 SK이노베이션 E&S 부사장은 "전남2·3 구획은 인허가가 필요한 군사 훈련, 선박 통행 구역 경계선에서 비켜나 있다"며 "하반기 해상 풍력 고정가격계약 경쟁입찰에서 사업자로 선정되면, 인허가가 필요한 다른 구역보다 빠르게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해상 풍력 발전기의 핵심 설비인 터빈은 현재 국산 제품 중에선 10MW급이 최대다. 전남2·3엔 15MW급 풍력 터빈을 투입할 계획인데 아직 국내에서 상용화된 제품은 없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지멘스 가메사와 협력해 조립 생산을 준비하고 있으나, 유럽산 제품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산 풍력 터빈은 유럽산보다 가격이 40%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보안 문제에 대한 우려가 있다. 전남2·3에 어떤 회사의 터빈을 사용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일단 중국산 제품은 배제한다는 게 개발사 측 입장이다.

전남 신안군 전남해상풍력1단지에 있는 해상 풍력 발전기./한국풍력산업협회 제공

업계에서는 국민성장펀드 등 공적 자금이 해상 풍력 사업에 더 많이 유입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실제 전남 신안우이 해상 풍력 사업에는 국민성장펀드 자금 투입이 확정됐다. 해상 풍력 발전 단가가 낮아져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 초기 사업을 뒷받침할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현재 국내 고정식 해상 풍력 발전 단가(LCOE·균등화발전비용)는 킬로와트시(kWh)당 300원 수준으로, 대형 원전(50~70원/kWh)과 비교하면 상당히 비싸다. 발전 단가가 비싸면 전력 조달 비용이 비싸져 전기 요금 인상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정부로서도 해상 풍력 비용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지가 과제다.

영국 사례를 보면 해상 풍력 누적 설비용량이 4GW를 넘어선 이후 발전 단가가 크게 낮아졌다. 국내 해상 풍력 누적 설비용량은 아직 0.35GW에 불과하다.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4GW, 2035년까지 누적 25GW 이상의 해상풍력을 보급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제 설치량이 계획대로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김진철 부사장은 "전남2·3단지 준공 시점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보내는 게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발전 단가는 자연스럽게 떨어지기 때문에 그 시기를 버틸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