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호위함 사업에 이어 폴란드와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에서도 잇따라 고배를 마셨던 국내 조선사들이 동남아시아에서 반등의 기회를 찾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등은 동남아에서 점유율을 확대한 후 장기적으로 시장 규모가 큰 미국까지 공략할 계획이다.
1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지난 8일(현지 시각) HD현대중공업과 스페인 방산 기업 등을 제치고 태국 해군의 신형 호위함 도입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사업의 규모는 167억3000만바트(약 6807억원)로 함정 건조 뿐 아니라 부품 공급과 교육, 시험·검수, 보증 등 후속 지원까지 포함된다.
태국 정부는 향후 3~4조원을 투입해 이번 호위함을 포함해 신형 함정 총 4척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은 2018년 12월 태국 해군에 3700t(톤)급 호위함 '푸미폰 아둔야뎃함'을 인도했다. 최고 속도 약 30노트(시속 55㎞), 항속 거리 4000해리로 함대함·함대공 미사일과 어뢰, 함포 등을 갖춘 태국 해군의 주력 전투함이다.
한화오션은 앞서 납품한 함정을 운용하며 경험을 쌓은 태국 해군의 요구 사항을 반영한 신제품 '오션-40F'를 앞세워 이번 신형 호위함 사업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 2024년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도전했던 호주 범용 호위함 사업에서는 호주 해군의 요구에 맞춘 설계안을 제시하지 못해 두 업체 모두 수주에 실패했었다"며 "한화오션이 당시 경험을 발판 삼아 태국 해군의 요구 사항을 최대한 반영하고 기존 함정의 성능을 개선해 수주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도 필리핀을 기반으로 동남아 지역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한화오션과 마찬가지로 필리핀이 과거 납품했던 함정들을 운용해 온 점을 공략해 성능을 개선한 신형 함정까지 수주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필리핀 해군과 첫 호위함 공급 계약을 체결한 HD현대중공업은 지금껏 호위함, 초계함, 원해경비함(OPV) 등 총 12척을 수주해 6척을 인도했다. 여기에 필리핀 정부의 한국산 미사일 호위함 2척 구매 사업까지 따내겠다는 게 HD현대중공업의 목표다.
국내 조선사들이 동남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인 후 장기적으로 노리는 다음 시장은 미국이다.
한국 호위함은 일본 모가미급 수출형, 튀르키예 이스탄불급 등과 함께 미 해군의 차기 호위함 후보군으로 검토되고 있다. 한국이 내세우는 모델은 울산급 배치-Ⅲ인 '충남급 호위함'이다. 길이 129m, 폭 14.8m, 높이 38.9m에 경하배수량 3600t급으로, 미 해군은 이 호위함과 비슷한 체급의 함정 도입을 원하고 있다.
울산급 배치-Ⅲ 1번함은 HD현대중공업이, 2~4번함은 SK오션플랜트가 건조했다. 5·6번함은 한화오션이 건조 중이다. 이들 3사는 모두 미 정부의 정보제공요청(RFI)에 회신한 상태다. 향후 미국이 요구하는 무장과 전투 체계, 현지 건조·정비 조건 등에 맞춰 기존 설계에 빠르게 반영할 계획이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이 밖에 그리스와 칠레, 이집트 등과도 함정 사업을 놓고 접촉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상당수 국가가 사업을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향후 함정 도입 가능성을 놓고 업체와 발주국이 서로 조건을 탐색하는 이른바 '태핑(tapping)' 단계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함정 수주전은 단순히 함정의 성능과 가격만 겨루는 경쟁에서 벗어나 기존 무기 체계의 운용 경험과 맞춤형 설계, 현지 산업과의 협력 방안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며 "호위함뿐 아니라 잠수함 사업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잠수함 수출에서도 지금껏 쌓였던 실패 경험이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폴란드 오르카 사업과 올해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잇따라 수주에 실패했지만, 경쟁 과정에서 한국 잠수함의 기술력을 해외에 알리는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두 사업에 제안했던 모델의 전신인 도산안창호급 잠수함은 한국에서 캐나다까지 장거리 항해를 하면서 잠항 지속 능력을 보여줬고, 각종 미사일을 잠수함에 통합할 수 있는 설계·건조 역량도 증명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호위함 도입을 추진하거나 검토하는 국가 중 일부는 잠수함 전력 확충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함정 수출을 단발성 계약으로 끝내지 않고 잠수함, 유지·보수·정비(MRO)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