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중동 지역 전선 확대로 인해 7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홍해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봉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되면서다.

국내 정유 4사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 발발 이후 원유 수입 물량 상당량을 홍해를 거쳐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경유하는 경로로 이송했기에 전쟁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향후 중동 상황에 따라 국내 정유사들의 공급선 다변화 움직임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그래픽=손민균

11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10일(이하 현지 시각)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전장보다 6.42달러 오른 배럴당 107.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긴 것은 7월 이후 9일이 처음이다. 이틀 연속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긴 것이다.

국제유가는 지난 4월 말 배럴당 126달러까지 올라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7월 초에는 70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까지 하락했으나, 후티 반군과 사우디의 충돌이 격화하면서 다시 급등했다.

유가가 또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것은 미국과 이란 충돌로 사실상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 통행량이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봉쇄될지 모른다는 예상 때문이다. 선박 추적 업체 케플러에 따르면 8일 기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한 화물선은 25척으로 이전 10일 동안 오간 평균 선박 수(27척)보다 소폭 줄었다.

후티 반군이 8일 공격한 사우디 남부 4개 도시 중 원유 관련 시설이 있던 곳은 지잔이다. 지잔은 원유 수출 항구는 아니지만, 원유 정제 및 저장고가 있다. 하루 40만배럴의 정유공장이 가동 중인 지역으로 사우디 내륙 유전에서 끌어온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경유, 석유화학 제품 등을 생산하던 곳이다.

국내 정유 4사는 사우디에서 석유제품을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원유를 수입하므로 지잔에 있는 아람코 정유 시설이 공격받은 것보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봉쇄될지 여부가 관전 요소로 꼽힌다. 미국과 이란 전쟁 이후 사우디는 호르무즈 해협 반대편에 있는 홍해 쪽 얀부항을 통해 한국으로 원유를 수출했다. 사우디 얀부항에서 원유를 선적한 유조선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는 길이 한국까지 오는 최단거리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바브엘만데브 해협마저 봉쇄될 경우 홍해 북쪽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면서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경우 운송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운송비도 증가한다"고 말했다.

5월 이후 국내로 들어오는 사우디 원유 수입량과 비중은 증가하던 중이었다. 미국과 이란 전쟁 이전 사우디 원유 수입량은 3359만1000배럴로 전체 원유 수입량의 35.83%를 차지했다. 하지만 2월 들어 이 비중은 32.03%로 감소했다. 사우디산 수입 비중은 4월 한때 24.7%까지 감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5월 이후 사우디 원유 수입량과 비중은 회복세로 돌아섰다. 5~7월 사우디 원유 비중은 전체 수입량의 25.9% → 30.3% → 33%로 점차 늘었다. 사우디 원유 수입량 역시 7258만배럴 → 7358만배럴 → 9318만배럴로 증가했다.

그러나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봉쇄된다면 얀부항을 통한 원유 수입 경로의 활용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사우디와 후티 반군의 전쟁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국내 정유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불가피하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됐을 때처럼 미국, 호주 등으로 원유 수입처를 늘려 수입선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중동산 원유를 들여올 때보다 운임이 더 많이 드는 비(非)중동산 원유 도입 시 추가 운임 일부를 환급하는 방식으로 수입선 다변화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로 들어온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62.3%로 지난해 상반기(68.7%)보다 6.4%포인트(P) 줄었다. 올해 상반기 수입한 미국산 원유 비중은 20.5%로 상반기 기준으로는 처음으로 20%를 넘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10월 도입 물량까지는 평상시 수준으로 확보돼 있어 당장 타격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중동 상황이 장기화될지 여부에 국제유가도, 수급 상황도 달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