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소 800조원 규모의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하는 가운데, 호남에서 실제 만들어낼 수 있는 전력 실효용량이 미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치상 최대 용량만 따지면 수요 충당이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 쓸 수 있는 실효용량은 미래 수요를 못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간 정부와 청와대는 호남의 신재생에너지 공급 여건이 뛰어나 전력이 충분하다고 했지만, 업계에선 이미 인프라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광주 광산구 소재 군 공항 부지. /연합뉴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황정아·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10일 국회에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은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 제12차 전기본의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기후에너지부와 전력거래소 담당자를 포함해 PMG 등 원전 기업 및 학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이날 발제자로 참석한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정부가 호남의 전력이 풍부하다며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로 선정했지만, 문제는 실효용량이 미래 피크수요를 못 따라간다"고 했다. '미래 피크수요'는 현재 수요와 호남반도체 수요 증가분의 총합을 뜻한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호남의 정격용량(발전 가능 최대용량)은 24.6GW로 미래 피크수요(19.1GW)를 초과하지만, 정작 실효용량(14.2GW)을 기준으로 하면 크게 부족하다. 태양광 등은 원전과 달리 간헐적으로 공급이 되는데, 이런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 전력 수급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전력 풍부'를 근거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를 선정했는데, 현 상태로는 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우려는 노조에서도 나왔다. 토론자로 참석한 강창호 한국수력원자력노동조합 위원장은 "지금 호남은 8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돼 메가 반도체 클러스터 프로젝트로 뜨겁지만, 우리가 사실 냉정하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호남의 명목상 설비용량은 미래 피크수요를 초과하지만, 태양광 등 간헐적인 전원 비중이 너무 높다"고 했다.

'주52시간 적용'이 공기 지연 및 경쟁력 악화 원인이 된다고도 했다. 강 위원장은 "원전은 건설, 시운전, 계획예방정비 등 특정 시기에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들의 집중적인 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특수 산업"이라며 "촌각을 다투는 시운전과 정비 현장에 획일적인 주 52시간제를 들이밀면 결국 공기 지연으로 이어져 글로벌 경쟁에서 스스로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자해 행위"라고 했다.

당초 이 자리에는 '대한민국 3대 메가프로젝트'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와 SK그룹도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사업 당사자로서 입장이 난처한 점 등을 고려해 협의 단계에서 불참키로 했다고 한다.

자유토론에선 "기업이 손해가 나는데 호남으로 내려갈 이유가 없다"는 취지의 말이 여러 차례 나왔다. 강 위원장은 "기업들이 현재 (전력 부족) 등 여러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중재 원자력정책연대 이사장도 "기업이 살게끔 전력부터 제대로 공급해줘야지, 무조건 지으라고 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기업이 '사업성이 없다' 판단하면 100가지 이유를 대서라도 안 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