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9일 임시주주총회 감사위원 표결에서 승리했지만, 마음을 놓기는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다수 이사진의 임기가 한꺼번에 만료되는 내년 3월 정기주총이 MBK파트너스·영풍측과의 경영권 분쟁 '본게임'이기 때문이다. MBK가 영풍 측과 맺은 콜옵션 행사 가능 시점이 다음달로 다가온 것도 변수가 될지 주목받고 있다. 다만 영풍이 '경영협력계약' 전문을 공개하지 않아 구체적 내용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10일 고려아연·영풍 등에 따르면 내년 3월 고려아연 정기주총에서는 이사 8명과 분리선출 감사위원 1명 등 총 9명이 선임될 예정이다. 현 이사 가운데 최 회장 측 5명, MBK·영풍 측 3명이 포함돼 있다. 현재 12대 7의 이사회 구조가 바뀔 수 있다. 임기 만료 이사를 제외하면 최 회장 측 7명, MBK·영풍 측 4명이 남는다.
시장에서는 8명의 이사가 최 회장 측 4명과 MBK·영풍 측 4명으로 결정될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양측의 총 지분율(약 38·41%)이 비슷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4대 4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양측의 우호 지분이 40% 안팎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4대 4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감사위원 1석은 최 회장 측이 유리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번 임시주총에서 '3% 룰'이 적용돼 80% 이상 득표로 최 회장 측 백인규 단국대 교수가 선임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새로 자리가 나는 이사 9석은 최 회장 측 5명, MBK·영풍 측 4명으로 채워지게 된다. 이사회의 구조가 현 12대 7에서 11대 8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MBK·영풍의 비율이 다소 높아지는 것이다.
여기에 내달 MBK의 콜옵션 행사 여부도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MBK는 2024년 영풍과 체결한 경영협력계약에 따라 영풍 측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약 257만주(지분 약 12%)를 영풍 측으로부터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콜옵션은 매도청구권, 즉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다. 영풍과 맺은 계약상 명시된 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콜옵션 행사 가격은 비공개이지만, 시장에서는 약 80만원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MBK는 2년 전 영풍과 함께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그 가격을 초반 66만원에서 83만원까지 높인 바 있다. 콜옵션 시기는 당시 공개 매수 종료일인 2024년 10월 14일로부터 2년이 되는 시점과 MBK·영풍 측이 이사회 과반을 확보하는 시점 중 빠른 때다. MBK·영풍 측이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만큼 다음달 행사 가능 시점이 도래한다.
MBK가 콜옵션을 행사할지를 두고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콜옵션 행사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MBK는 공개 매수 당시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사전에 합의된 가격으로 고정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고려아연 주가가 이날 기준 120만원대인 만큼 계약상 행사가격이 시장 가격보다 낮아 콜옵션을 행사할 유인이 클 수 있다. 다만 경영권이 보장되지 않은 고려아연 주식을 대규모로 추가 보유하게 될 경우 향후 투자금 회수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일각에서는 MBK가 홈플러스 사태로 한국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지면서 고려아연의 물량은 갖고 갈 것이라고 보지만, 언젠가는 매각을 해야 한다"면서 "시중 유통 물량이 많지 않을 경우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을 해야 하는데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는 주식을 사줄 대상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MBK 측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의 고려아연 지분은 지난 5월 기준 8.25%, 영풍 측은 100% 자회사 와이피씨(YPC)를 통해 25.21%를 보유하고 있다. MBK가 콜옵션을 행사하면 영풍 측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일부가 MBK로 넘어가면서 양측의 직접 보유 지분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콜옵션은 영풍 측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을 MBK가 인수하는 구조인 만큼 행사 자체로 MBK·영풍 측의 고려아연 지분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는 MBK가 콜옵션으로 취득할 수 있는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현재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일부를 먼저 매각한 뒤 콜옵션을 행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콜옵션 행사 규모가 양측의 보유 지분 관계 등에 따라 결정되는 계약 구조라면 MBK가 기존 지분을 줄일수록 영풍 측으로부터 인수할 수 있는 물량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MBK와 영풍이 체결한 경영협력계약 전문이 공개되지 않아 콜옵션 물량과 행사 후 양측의 정확한 지분율을 예상하기가 어렵다. 다만 영풍 공시에 따르면 MBK는 직접 보유 지분과 별개로 경영·지분상의 권리도 가졌다. 이사회 구성과 최고경영진 인사, 의결권 행사, 지분 처분과 향후 매각까지 MBK의 권한이 상당 부분 보장돼 있다. 시장에서는 계약 전문이 공개되지 않아 MBK 지분율 확대로 어떠한 변화가 생길지를 예상하지는 못하고 있다.
영풍 측은 '경영협력계약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결정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 민사1부는 지난 1일 장형진 영풍 고문이 문서제출명령에 불복해 제기한 재항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앞서 "공개매수신고서 등을 통해 공시된 내용은 계약서의 주요 사항을 요약한 것으로, 영풍과 피고 장형진이 한국기업투자홀딩스에 부여한 콜옵션의 구체적인 행사 방법 등이 그것만으로 모두 밝혀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영풍 관계자는 "판결이 이행 기간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이행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