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9일 연 임시주주총회에서 최윤범 회장 측 백인규 단국대 교수가 MBK·영풍 측 박유경 전 APG자산운용 아시아·태평양 책임투자 총괄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감사위원에 선임됐다. 이번 주주총회에 주요 안건이었던 감사위원 선출에서 최 회장 측이 승기를 잡으며 고려아연 이사회 내 우위가 공고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임시주총으로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2명, MBK·영풍 측 7명 등 총 19명으로 재편됐다. 기존 이사회는 최 회장 측 9명, 영풍 측 5명 등 총 14명으로 구성됐었다. 집중투표제로 선출하는 독립이사 4석은 양측이 각각 2석씩 확보했고, 감사위원 1석을 최 회장 측이 가져면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고려아연 제공

백 교수는 이번 주총의 출석 주식 622만5934주 중 509만2815주의 지지를 받았다. 이는 출석 의결권 대비 81.8% 수준이다. MBK·영풍 측이 추천한 박유경 전 APG자산운용 아시아·태평양 책임투자 총괄은 총 173만9065주(27.9%)의 표를 얻어 고배를 마셨다. 두 사람의 합산이 출석 주식 수(100%)를 넘어선 건 국민연금이 양쪽 모두에 표를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날 감사위원 표결은 3-1안건(백 교수), 3-2안건(박유경 총괄)으로 나눠서 진행됐다.

독립이사로는 최 회장 측 이형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와 서은숙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MBK·영풍 측 이준봉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심혜섭 변호사가 선임됐다. 득표 결과는 심혜섭, 이준봉, 이형규, 서은숙 후보 순이었다.

이번 고려아연의 감사위원 분리선출건은 개정 상법에 따라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로 제한하는 '합산 3%룰'이 실제 경영권 분쟁에 처음 적용된 사례다.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과 고려아연 임원인 최 회장은 경영권 분쟁 중임에도 '3%룰'을 적용받았다.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하면서 허용된 3%의 의결권을 보유지분에 따라 안분해 행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MBK는 영풍과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을 맺었지만, 자본시장법상 공동 보유자일 뿐 상법상 특수관계인에는 해당하지 않아 별도로 최대 3%의 의결권을 행사했다. 최 회장 측 핵심 우호 주주인 크루서블JV도 약 10%의 보유 지분에 대해 최대 3%까지 의결권이 인정됐다. 상법상 특수관계인 여부에 따라 행사 가능한 의결권 비율이 달라진 것이다.

경영권 분쟁 중인 양측의 대규모 지분이 '3% 룰'에 묶이면서 한화그룹과 LG화학 등 주요 주주가 캐스팅보터로 급부상했다. 한화그룹은 한화에이치투에너지·한화임팩트·㈜한화 등 3개 계열사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7.69%를 보유하고 있다. 계열사별로 개별 3% 룰이 적용될 경우 약 5.9%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도 약 1.8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MBK가 주총을 앞두고 한화와 LG화학에 박 후보 지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막판 표심 확보에 나선 배경이다.

국민연금은 약 5%의 지분을 갖고 있다. 당초 최 회장 측을 지지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번 주총 직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열어 양측 모두에 찬성하기로 입장을 번복했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교수는 이번 임시주총 결과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사모펀드에 경영권이 넘어가 회사가 불확실성에 빠지는 것을 우려한 주주들의 표심"이라면서 "지금까지 좋은 경영 실적으로 보여준 현 경영진에 대한 지지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 임시총회 결과로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해졌다고 해석하긴 어렵다. MBK·영풍도 집중투표 방식으로 선출된 독립이사 4명 가운데 2명을 확보하면서 이사회 내 의석이 기존 5석에서 7석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득표 수로도 MBK·영풍 측 후보가 1, 2위를 차지했다. 감사위원 선출에서는 최 회장 측이 승리했지만 MBK·영풍 역시 이사회 내 견제력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최 회장 측 의석은 기존 9석에서 12석으로 늘어나 비율로는 전체 19석 중 63% 수준을 차지하게 됐다. 기존의 의석 수 비율 약 64%에서 큰 변화는 없는 셈이다.

이날 가장 먼저 처리된 1호 안건은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으로, 분리선출 감사위원을 1명(서대원)에서 2명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개정 상법과 법무부 유권해석에 따라 대형상장사는 이달 10일까지 분리선출 감사위원을 2명 이상 둬야 한다. 고려아연이 마감 하루 전인 9일 임시주총을 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도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를 추진했지만, MBK·영풍 측 반대로 부결된 바 있다.

한편 이날 고려아연 임시주총은 중복 위임장 확인으로 25분가량 지연된 오전 10시25분에 개회했다. 지난 3월 정기주총은 3시간가량 지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