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한국형 베어허그 인수합병(Bear Hug M&A·파격적 인수합병 조건 제시를 통한 협상 압박)'을 지원하는 목적의 펀드 조성을 추진하는 정부가 연기금을 활용해 행동주의 사모펀드(PEF)에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자금으로 직접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적법성 논란을 고려해 위탁 운용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주가가 낮게 유지되는 기업이나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 등은 정책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 /뉴스1

◇'산은 펀드'는 않기로…공적연금 '행동주의 PEF 위탁 투자' 검토

8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최근 국무회의 비공개 석상에서 M&A 시장 활성화를 통한 기업·주주가치 제고 대책으로 '베어허그 M&A 지원펀드' 조성을 논의했다. 베어허그란, M&A 시장에서 인수 희망자가 대상 기업에 현재 주가보다 높은 가격과 파격적 조건을 공개적으로 제시해 경영진이 협상에 응하도록 압박하는 방식이다. 곰이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껴안는 모습에 비유한 용어다.

현행법상 우리나라는 기업이 인수 제의를 받더라도 이사회가 이를 공시하거나 의견 표명을 할 의무가 없다. 설사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 인수 제안이더라도, 대주주가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해 거부하고 이 사실을 숨길 수 있다. 공개할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주가가 오르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업들은 오히려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이고자 주가를 낮게 방치하는 경우도 있는 상황이다.

정부·여당은 이를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법 개정' 및 '사모펀드(PEF) 위탁운용' 등을 검토 중이다. 기업이 받은 인수 제안 및 거부 근거를 주주에게 의무 공개하도록 법을 바꾸면, 기업의 실제 가치가 노출 돼 '의도적 주가 누르기'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적 연기금이 PEF에 자금을 위탁해 간접적으로 베어허그 M&A에 참여토록 하는 방안도 논의됐다고 한다. 당초 비공개 회의에선 산업은행 주도로 펀드를 만들어 M&A 자금을 지원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러나 상급 기관인 금융위원회가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책은행인 산은이 주식시장 활성화 목적으로 펀드를 조성할 근거가 불확실해서다. 대신 ▲민간에서 저평가 기업을 인수하는 사모펀드(PEF)를 조성하고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PEF 등에 위탁 투자·운용케 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됐다고 한다.

◇與 '누가누르기 방지' 입법 속도…"펀드도 묶어 지원책 고민"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 증권 규정인 의견 표명서(Schedule 14D-9)에 따라, 외부로부터 공개매수 제안이 있을 시 이사회가 10영업일 이내 주주들에게 의견을 표명하고 공시해야 한다. 영국도 인수법(UK Takeover Code)상 인수합병 제안을 받은 기업 이사회가 즉시 이를 공개하고 최종 판단을 주주에 맡긴다. 지난해 12월 워너브러더스 이사회가 '넷플릭스와 체결한 합병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파라마운트의 공개매수에 응하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주주서한을 홈페이지에 게시한 게 대표적 사례다.

현재까지 구체적 방식 및 대상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재계에서는 상당수 대기업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인 없는' 소유분산 기업, 막대한 부동산 자산 등이 주가에 반영되지 않아 PBR이 0.5 미만인 기업, 자회사 합병이나 신사업 자금 조달로 주가가 저평가 된 기업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인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입법 및 펀드 조성만으로도 기업의 태도 변화를 압박할 수 있다. 청와대는 '주주가치 제고'에 무게를 두고, 국무회의에 이어 관련 정책을 추가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에서도 공개매수제도 법제화 등 베어허그 M&A 지원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카카오뱅크 대표 출신 이용우 전 의원을 '금융증시경제제도 개선추진단' 단장으로 영입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공시 제도 전반을 손 볼 계획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외국 사례를 봐도 공격적 M&A를 활성화할수록 주가누르기가 감소한다는 연구들도 있어서 여러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고 했다. 또 "정부가 직접 정책자금으로 펀드를 만드는 건 아니다"라며 "자본시장 체질개선 차원에서 당정이 베어허그를 논의했으니 펀드도 묶어서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