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운전하지 않고 스스로 작업을 수행하는 완전 무인·자율 굴착기가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숙련 인력 부족과 안전성 문제 등으로 인해 자동화 바람이 거세지고 있어 향후 시장 규모가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텍사스주 건설 현장에 베드락 로보틱스의 '베드락 오퍼레이터' 설루션이 탑재된 무인 자율 굴착기가 토사 운반을 하고 있다./ 베드락 로보틱스 유튜브

8일 시장조사업체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자율 건설장비' 관련 시장 규모는 올해 177억1000만달러(약 24조원)에서 오는 2034년 352억2000만달러(약 48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평균 성장률은 9%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자율 건설장비는 카메라와 센서·인공지능(AI) 등이 탑재된 자동화 장비나 운전자를 보조하는 지능형 굴착기, 운전자 없이 완전 자율로 움직이는 무인·자율 건설 기계 등을 포함한다. 부품도 포함된 개념이다.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는 "건설 현장의 인력 부족과 고임금 심화로 자율 건설 장비 도입이 촉진되고 있다"며 "특히 완전 자율 건설 장비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들어 무인·자율 굴착기가 실제 공사 현장에 투입되는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미 시공업체 챔피온 사이트 프렙(Champion Site prep)이 시공 중인 미국 텍사스주의 약 92만㎥ 규모의 초기 토목 공사 현장에는 토사 운반 등의 작업이 가능한 완전 자율·무인 굴착기가 투입됐다.

이 굴착기는 미국 건설기계 업체 캐터필러의 제품이다. 건설기계용 자율·무인 시스템 개발사인 베드락 로보틱스가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자율 시스템이 탑재됐다. 굴착기 스스로 주변 환경을 학습하고 이동 경로를 계획하는 등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장비는 굴착 작업 진행 상황을 스스로 모니터링 하고, 안전 대응 시스템도 탑재돼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자동으로 멈춘다. 베드락 로보틱스는 해당 시스템이 탑재된 자율·무인 굴착기가 사람의 감독이나 개입 없는 '오퍼레이터 아웃(Operator-out)' 방식으로 현장에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현장에 투입된 굴착기의 생산성은 현재 사람과 유사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베드락로보틱스는 굴착기의 생산성을 작업 교대 근무 1회 동안 이동시킨 토사 부피를 기준으로 측정하고 있다.

베드락 로보틱스는 해당 굴착기를 실제 건설 현장에 투입하기 위해 1년 간 실증 단계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텍사스주 토목공사 현장과 네바다주 수처리 시설 공사 현장에도 해당 시스템이 설치된 자율·무인 굴착기가 투입됐다. 베드락 로보틱스 측은 향후 굴착기와 불도저 등 여러 장비가 건설 현장에서 협력하며 작업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또 다른 굴착기 자율 주행 시스템 개발 업체인 그라비스 로보틱스는 홀심, 히타치 등 여러 건설기계 업체 제품에 자율·무인 설루션을 공급하고 제품 실증을 진행하는 중이다. 현재 제품 출고 전부터 이 설루션이 탑재된 완전 자율·무인 굴착기 출시도 앞두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달 소프트뱅크로부터 2억달러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그라비스 로보틱스는 이번 투자를 통해 자율·무인 건설기계 시스템 '그라비스 랙'의 상용화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그라비스 로보틱스 관계자는 "이미 다양한 실제 장비로 현장에서 검증을 완료했다"며 "이번 투자를 통해 건설 시장 전반에 걸쳐 자율·무인 시스템을 중장비에 통합하는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주요 건설기계 업체들도 자율·무인 굴착기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HD건설기계는 실제 건설 현장에 굴착기를 투입해 제품 테스트를 하는 중이다.

HD건설기계는 지난 4월 스위스 투겐 지역 건설 현장에 굴착기 1대를 투입해 실제 작업 환경에서 굴착기의 작업 성능과 자율 기능을 검증하는 취지의 현장 실증을 진행했다. 연내 국내 건설 현장에서도 비슷한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두산밥캣도 건설장비 제품에 피지컬 AI를 적용하기 위해 지난 6월 국내 AI 업체인 마음 AI와 업무 협약을 맺고 실증 작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8월에는 경기 안양에 건설 장비 전동화를 위한 연구 센터 '이포스랩(eFORCE LAB)'도 개소했다.

건설기계 업계 관계자는 "굴착기는 일반 로봇이 배치되는 공장과 달리 현장의 지형과 환경이 실시간으로 변하기 때문에 자율화 속도가 더딘 편이었지만, 현재는 기술이 상용화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국내는 자율 주행차와 같이 강도 높은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며 "규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빠른 상용화의 관건"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