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003490) 조종사 노동조합(KAPU)이 쟁의권 확보를 위해 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KAPU가 노동위원회 조정을 신청한 것은 2016년 파업 이후 10년 만이다. KAPU는 12월 17일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에 따라 바뀌는 조종사 시니어리티(서열 제도)를 노사 합의로 결정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서열 제도는 고유의 인사권에 해당한다며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KAPU는 이날 오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쟁의행위 조정 신청을 했다. KAPU는 지난 4월 조합원 총회를 통해 약 80%의 동의를 얻어 쟁의 행위 추진안을 가결한 상태다. 쟁의권 확보를 위한 마지막 절차를 밟은 것이다. KAPU는 조정 신청에 앞서 지노위에 '조정 전 지원'도 신청했지만, 사측 동의를 얻지 못하면서 개시되지 못했다.
쟁의행위 조정은 사측 동의가 없어도 개시가 가능하다. 대한항공은 필수 공익 사업인 항공운수업을 영위하고 있어 조정 기간이 일반 기업보다 닷새 긴 15일이다. 이해관계자가 모두 합의하면 추가 15일 연장이 가능해, 최장 30일 내로 절차가 마무리된다. 노사가 조정을 통해 마련한 대안에 합의하면 파업이 벌어지지 않겠지만, 조정이 성립하지 못할 경우 곧장 파업에 착수한다는 것이 KAPU의 계획이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 노사가 조정을 통해 대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대한항공이 줄곧 '서열 제도는 인사권'이라며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승진에 해당하는 기장 승격이 서열 제도에 따라 이뤄지는 만큼, 사용자가 갖는 고유한 인사 결정 권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측은 "회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간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해 안전운항을 담보할 수 있도록 중립적인 서열 제도안을 마련했다"면서 "하지만 KAPU가 이기적인 요구를 관철하고자 쟁의 조정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KAPU는 단체협약 24조(노사 협의로 정한 운항승무원 서열순위 제도를 준수한다)를 근거로 서열 제도를 교섭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 서열제도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에 따르더라도 근로자의 지위 기타 대우 등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에 해당하기 때문에 노동쟁의가 가능한 교섭사항이라고 주장한다.
KAPU는 또 미국 델타항공과 노스웨스트항공의 합병 사례나 합병 절차 중인 알래스카항공과 하와이안항공도 서열 제도안을 노사 간 합의로 먼저 도출한 만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와 협의가 우선돼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조정이 불성립될 경우 대한항공은 2016년 이후 10년 만에 조종사 파업 사태를 맞을 가능성이 커진다. 당시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2015년 임금 협상이 결렬되면서 일주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당시에도 조종사 파업은 11년 만이었다.
노조는 효과적인 쟁의 행위 추진을 위해 지노위에 필수유지업무 결정도 신청한 상태다. 앞선 지노위 결정에 따라 대한항공은 국제선 80%, 제주 노선 70%, 국내선 50%의 운항률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 경우 파업의 효과가 미미할 수 있어서다. KAPU는 항공운수사업이 필수 공익 사업으로 지정된 2006년과 지금은 국내에 취항한 항공사 규모부터 다른 만큼 필수유지업무 비율도 조정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