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전력 설비에 쓰이는 온실가스 규제를 강화하면서 유럽 친환경 전력기기 시장이 커지고 있다. 효성중공업(298040), HD현대일렉트릭(267260), LS일렉트릭( LS ELECTRIC ) 등 국내 전력기기 기업들은 현지 규제에 맞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친환경 제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섰다.

6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EU는 2032년부터 145킬로볼트(kV)를 초과하는 고압 개폐장치에 지구온난화지수(GWP·Global Warming Potential) 1 이상 불소계 온실가스 사용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HD현대일렉트릭의 독자 개발한 SF6 프리 고압차단기(가스절연개폐장치)/HD현대일렉트릭 제공

GWP는 특정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서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정도를 이산화탄소(CO₂)와 비교해 나타낸 지표다. 통상 100년을 기준으로 하며, 이산화탄소의 GWP를 기준점인 1로 둔다. GWP가 높을수록 같은 양이 배출됐을 때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의미다.

고압 개폐장치 가운데 대표적인 제품이 가스절연개폐장치(GIS·Gas Insulated Switchgear)다. GIS는 변전소와 발전소 등에 설치돼 전기의 흐름을 안전하게 열고 닫는 필수 장비다. 사고가 발생하면 전류를 빠르게 차단해 전력망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껏 GIS에는 절연 성능이 뛰어난 육불화황(SF₆)이 주로 사용됐다. 그러나 GWP가 2만3500~2만3900에 달해 같은 양을 배출했을 때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2만배 이상 큰 온실가스로 꼽히면서 SF₆를 전력 산업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규제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전력기기 업체들은 SF₆를 대체할 친환경 절연가스를 적용한 GIS 개발에 나서고 있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은 최근 잇따라 신제품을 선보였다.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 8월 국제대전력망협의회(CIGRE) 파리 세션 2026에서 420kV급 친환경 GIS를 나란히 공개했다. 420kV급은 국가와 지역을 잇는 유럽 기간망에 폭넓게 쓰인다.

두 회사 제품 모두 기존 GIS에 포함된 SF₆ 대신 C4F7N(플루오로나이트릴) 계열 혼합가스를 절연가스로 적용해 GWP를 2000대로 낮춘 게 특징이다. 기존 SF₆의 GWP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다만 EU 규제는 GWP가 1 이상인 불소계 가스의 사용을 궁극적으로 제한하고 있어 추가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지멘스에너지는 질소와 산소를 절연가스로 사용하고 진공으로 전류를 차단하는 GWP 0 방식의 420kV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420kV급 친환경 GIS 설비 발주가 시작됐다. 히타치에너지와 GE버노바가 유럽 전력망 공급 실적을 먼저 쌓았다. 국내 업체들은 아직 수주 실적은 없지만 제품 개발과 인증에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이 개발한 420kV급 친환경 GIS는 유럽 송전망 운영사(TSO)의 사전적격심사(PQ)를 통과했다. 영국 주요 전력회사와 장기 공급 계약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효성중공업은 2030년까지 친환경 GIS를 전체 제품군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배전 분야에서도 친환경 제품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LS일렉트릭은 배전 분야에서 배선용차단기(MCCB), 전자접촉기(MC), 기중차단기(ACB), 진공차단기(VCB)에 쓰이는 절연물을 '할로겐 프리' 소재로 대체했다. 할로겐계 소재는 폐기·소각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발생할 수 있어 유럽을 중심으로 사용을 줄이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