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이 4일(현지 시각) 미국 현지 철강 생산을 위한 첫 삽을 떴다.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은 이날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 어센션 패리시 도널슨빌시(市)에서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HYUNDAI-POSCO Louisiana Steel)' 기공식을 열고 현지 자동차용 강판 생산체계 구축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들어갔다.

HPLS는 미국의 첫 전기로 기반 자동차 강판 특화 제철소다. 중국에 이어 연간 자동차 판매량 세계 2위인 미국에서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할 첫 전기로 제철소를 한국 철강사들이 세우는 것이다. HPLS는 무역 장벽을 높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의 통상 기조에 대응해 한국 기업들이 대규모 대미 투자를 통해 한미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상징적 사업으로 평가된다.

HPLS는 현대차그룹이 주도하고 포스코그룹이 지분 투자를 통해 참여하는 합작 형태로 건설된다. 총 투자비는 58억달러(약 7조8500억원) 규모다. 현대제철이 지분 50%, 현대차와 기아가 각 15%, 포스코가 지분 20%를 투자한다.

현재 제철소 관련 인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HPLS 전기로 제철소 건설과 운영을 총괄하는 현대제철은 오는 4분기 착공해 2029년 1분기 양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4일(현지 시각) 미국 루이지애나주 어센션 패리시 도널슨빌시에서 열린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YUNDAI-POSCO Louisiana Steel)' 기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도널슨빌(미국 루이지애나주)=김남희 기자

◇총 58억달러 투자… 美 현지 철강 생산으로 자체 공급망 구축

HPLS 전기로 제철소는 미시시피강 하류의 737만㎡(약 223만평) 부지에 지어진다. 루이지애나주 도널슨빌은 미시시피강을 통해 멕시코만으로 이어지는 수운망을 갖춰 원료와 제품 운송을 위한 물류 인프라가 뛰어난 곳으로 꼽힌다. 루이지애나주는 석유화학·철강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된 미국 남부의 대표적인 산업 거점이기도 하다.

이날 오후 3시(한국 시각 5일 오전 5시)부터 열린 기공식엔 한미 정관계 주요 인사와 현대차그룹·포스코그룹 경영진 등 약 250명이 참석했다. 현대차그룹에선 정의선 회장, 이보룡 현대제철 사장,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 성 김 현대차그룹 사장, 서강현 현대차그룹 사장 등이 참석했다. 포스코그룹에선 장인화 회장, 김광무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우리 정부에선 대미(對美) 투자를 총괄하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강경화 주미 대사, 이경은 주휴스턴 총영사 등이 참석했다. 미국 측에선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 윌리엄 키미트 상무부 국제무역담당 차관, 트로이 카터 민주당 하원의원, 줄리아 레틀로우 공화당 하원의원 등이 참석해 축하했다.

정의선 회장은 환영사에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강 제품은 현대차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자동차 제조사들이 차세대 모빌리티를 생산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고로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은 전기로 제철소 건설에 대해 "철강 산업이 보다 자원순환적이고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시작점으로, 혁신과 지속 가능성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이곳 루이지애나에서 증명하고 있다"고 했다.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축사에서 "현대제철이 북미 첫 제철소 부지로 루이지애나를 선택한 것은 숙련된 인력과 인프라, 우수한 비즈니스 환경 때문이며, 현대제철의 투자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지역 기업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랜드리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공화당 정치인으로, 지난해 3월 정 회장이 백악관에서 투자 발표를 할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철강 기술과 제조 역량, 미국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과 노동력이 만나면 압도적인 산업적 기회로 이어진다"며 "서로의 강점을 연결해 양국의 경쟁력을 함께 높이는 것이 한미 협력의 새로운 모습"이라고 했다.

HPLS 전기로 제철소는 지난해 3월 정 회장이 미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표한 21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의 핵심 사업이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5월 미국 사업 전담조직인 북미철강사업부를 신설하고 지난해 6월엔 현대제철루이지애나법인을 설립하며 HPLS 건설을 준비해 왔다.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철강 설비 기업 다니엘리, 독일 대형 설비 기업 SMS와 주설비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올해 3월엔 미국 에너지 기업 엔터지와 전력 공급 계약, 프랑스 산업 엔지니어링 기업 피브스와 냉연 설비 공급 상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이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 어센션패리시 도널슨빌시(市)에 건설할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HYUNDAI-POSCO Louisiana Steel)'의 부지를 드론으로 촬영한 전경. /현대제철

◇전기로서 연 270만톤 생산… 美 '저탄소' 자동차 강판 수요 공략

현대제철은 HPLS 전기로 제철소를 탄소저감 생산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핵심 생산기지로 삼을 계획이다. HPLS는 제철소 내에서 원료부터 최종 제품까지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일관 공정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제강 원료인 직접환원철(DRI)을 외부에서 조달하지 않고 직접 생산해 전기로에 투입하고 최종 제품까지 만드는 것이다.

탄소저감 제품 생산의 핵심은 직접환원철 생산 설비인 DRP(천연가스 등을 이용해 고체 상태에서 철광석을 순수한 철로 환원시키는 설비)다. DRP는 천연가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석탄을 사용하는 고로 공정에 비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HPLS 전기로 제철소는 첫 번째 공정인 DRP 외에 전기로·정련로·연속주조 설비(고온의 쇳물을 중간 소재로 만드는 설비) 등을 갖춘 제강공장, 열연강판을 생산하는 열연공장, 냉연강판과 도금강판 등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하는 냉연공장 등으로 구성된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전기로 쇳물은 고로 쇳물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70%가량 줄일 수 있고 DRP와 전기로를 같은 공장에서 직접 연결해 효율성과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다"며 "철스크랩만 사용하는 기존 전기로보다 고급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HPLS 전기로 제철소는 연간 270만톤의 철강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춘다. 이 중 자동차용이 180만톤, 일반용이 90만톤 규모다. 자동차용 강판 중 최대 40%가량을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공장에 공급하고 나머지는 미국 내 완성차 회사들에 판매한다는 방침이다. 고성능 철강재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 미국 내 다른 완성차 기업들의 수요가 탄탄할 것이란 게 현대제철 측 예상이다.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 어센션패리시 도널슨빌시(市)에 건설하는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HYUNDAI-POSCO Louisiana Steel)'의 조감도. 약 2년간 공사를 거쳐 2029년 제품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현대제철

◇포스코도 지분 20% 투자… 북미 시장 진출 가속

HPLS 전기로 제철소는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의 합작 투자로 설립된다. 현대차그룹이 지분 80%(현대제철 50%·현대차 15%·기아 15%), 포스코가 지분 20%를 보유한다. 올해 1월 각 사의 지분 출자가 시작돼 HPLS가 출범했다.

포스코는 완결형 현지화 전략에 따라 HPLS 합작 투자를 결정했다. 완결형 현지화 전략은 원료 조달부터 제품 생산과 판매, 서비스에 이르는 전 과정을 현지에서 완결하는 체계를 말한다. 포스코는 북미 지역에서 고부가 저탄소 자동차 강판 수요가 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북미 현지 생산·공급체계 구축에 나섰다.

포스코는 HPLS 전기로 제철소를 북미 철강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HPLS에서 생산한 철강 소재를 멕시코 알타미라의 자동차 강판 생산 법인인 포스코멕시코에도 공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