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에너지 공기업 통폐합 계획을 밝히면서,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한국석유공사가 가진 21조원 규모의 부채와 14조원이 넘는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두 회사를 통합한 뒤 부실 자산을 관리하는 자회사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가스공사가 상장 공기업인 만큼 주주의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4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일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를 통합해 가칭 에너지자원공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정부는 석유공사의 석유 비축과 석유 탐사 개발 기능 등을 에너지자원공사로 이관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3월 26일 한국석유공사 서산비축기지를 현장 방문했을 때 모습. / 청와대 제공

업계에서는 석유공사와 가스공사가 통합돼 덩치를 키우면 산유국이나 글로벌 에너지 기업을 대상으로 국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통합 관리해 해외 광구 입찰이나 협상을 할 때 유리한 위치를 점하겠다는 입장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생성 과정과 매장 환경이 동일해 동일한 유전이나 가스전에서 함께 발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수억 년 전 바다나 호수 밑바닥에 쌓인 미생물, 플랑크톤 등 유기물이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변성된 물질이다. 가벼운 천연가스는 유전 상층부에, 원유는 중층부에 보통 위치한다.

신현돈 인하대 교수는 "석유와 천연가스는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라 여러 대형 석유회사들은 두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며 "석유와 천연가스 사업을 한 곳에서 관리하겠다는 방향성은 옳다"고 말했다.

문제는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부실한 재무 상황을 어떻게 개선할 지 아직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석유공사는 지난 2020년부터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말 기준 석유공사 부채는 21조9733억원으로 자산(19조4442억원) 규모를 넘어섰다. 석유공사의 차입금 의존도는 자본잠식 이전인 2019년 76.4%에서 지난해에는 88.82%로 상승했다.

석유공사의 자본 잠식을 부른 가장 큰 요인은 해외 자원개발과 자원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이다. 석유공사는 2000년대 후반 캐나다 하베스트, 영국 다나 등 해외 석유 개발 기업을 M&A하거나 자산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대규모 출자를 받는 대신 대부분의 인수 자금을 채권 발행, 금융기관 차입으로 충당했다. 이로 인해 매년 4000억~5000억원의 이자를 부담해야 했다.

여기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인수한 석유 개발 기업의 현금 장출 능력이 떨어져, 장부상 자산 가치를 감액하는 손상차손이 발생했다. 2020년에만 해외 개발사업 관련 유·무형자산 손상 인식으로 인해 2조4000억원 규모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결국 자본 잠식에 빠졌다.

가스공사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한 1조5853억원을 기록하며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대규모 미수금이 발목을 잡고 있다. 올해 2분기 미수금은 14조1782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622억원 늘었다.

허장 재정경제부 2차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통합에 대해 우려가 나오는 상황을 알고 있다"며 "에너지 공기업 기능이 비슷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통합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통합 과정에서 가스공사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다. 미수금이 문제지만 표면적으로는 흑자를 내는 가스공사 주주 입장에서 자본잠식 상태의 석유공사 인수가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스공사 지분의 절반 이상인 54.48%는 정부(26.15%), 한국전력(20.47%), 지방자치단체(7.86%)가 갖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10.44%)과 일반 주주(28.61%)가 가지고 있는 지분도 39.05%에 달한다.

가스공사와 석유공사가 통폐합 하는 방안은 크게 합병, 자산인수, 지주사 설립 등이 거론된다. 만약 가스공사가 석유공사를 합병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주주총회를 열어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 주주총회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고,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하면 합병이 이뤄진다. 정부 지분만으로 합병이 무조건 가능한 것은 아닌 셈이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현재는 통합 방식에 대해 정해진 바가 없다"며 "정부에서 가스공사법, 석유공사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하고 주주, 노조 등 이해관계자에 대한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2027년 상반기까지 통합안을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석유공사의 부채 문제는 별도 법인을 설립해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내년 상반기 공공기관 개혁방안 관련 로드맵이 나올 때 구체적인 계획이 함께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