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방공망과 무선지휘통제체계를 무력화시키는 '한국형 전자전 항공기(전자전기)' 개발 사업은 1조8000억원 규모의 핵심 국방 사업이다. 이 초대형 사업이 최근 '뇌물 스캔들'에 휩싸였다. 방위사업청 공무원과 이 사업을 따낸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LIG D&A) 임직원이 얽힌 4억원대 금품 수수 정황이 수사 당국에 의해 포착된 것이다. LIG D&A는 "전자전기 사업은 독자 기술로 딴 별개 사업"이라며 회사의 미래를 걸고 검찰과의 진실 공방에 나섰다.
◇ LIG에 최고점 준 방사청 공무원… 세탁 거쳐 뒷돈 4.6억원 챙겨
3일 방산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사건의 중심에는 방위사업청 5급 공무원 A(49)씨가 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총 915억원 규모의 6개 방위 사업 제안서 평가위원으로 참여했다. A씨의 채점표는 지나치게 편향돼 있었다고 한다. 전체 20개 항목 중 16개에서 LIG D&A에 최고점을, 경쟁사에는 최저점을 줬다는 것이다.
이용욱 방사청장은 "평가위원은 희망자 중에 무작위로 선정하는데, 보통 희망을 잘 안 해 적극 나서는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는 구조였다"며 "특정 평가위원 혼자 점수를 높게 준다고 사업을 어떻게 따낼 수 있나 싶었는데, 굉장히 편향되게 높은 점수를 줘도 표준편차를 벗어난 데 대한 보정만 하는 방식으로 평가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즉 '몰아주기식' 점수를 줘도 점수가 무효가 되지 않고, 일정 수준 조율만 돼 합산됐다는 것이다.
그 대가로 A씨는 3억2000만원의 현금과 22억원 상당의 하청업체 용역 계약 체결 추천권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별도의 소개비 등을 포함하면 그가 받은 대가는 총 4억6000만원에 달한다. 이들은 직접 돈을 주고받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허위 용역 계약을 맺고 자문료 명목으로 돈을 보낸 뒤 이를 다시 현금화해 차명 계좌로 전달하는 등 다단계 방식을 썼다.
지난 25일 A씨와 자금 세탁 가담자들은 "공소 사실을 대부분 인정한다"고 했다.
◇ 한국형 전자전기 연관 여부 주목… LIG "공정 평가 거친 것"
핵심은 이 사건이 한국형 전자전기 사업과 연관돼 있는지 여부다. 검찰은 "6개 사업 중 3개는 LIG가 수주한 한국형 전자전기 연구·개발 사업의 핵심 선행 기술"이라며 "A씨가 영향을 끼친 3개 사업을 바탕으로 LIG D&A가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즉 4억원대의 뇌물을 제공해 대규모 전자전기 사업을 따냈다는 것이다.
한국형 전자전기 사업의 총사업비는 1조7777억원이다. 후속 사업까지 합하면 3조원을 웃돌 것으로 관측되는 초대형 사업이다. 이 사업은 주변국의 위협 신호를 수집·분석하고 전시에 전자공격으로 적 방공망과 무선 지휘통신 체계를 마비시키는 특수 임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LIG D&A는 대한항공과 손잡고 지난해 12월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당시 경쟁사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한화시스템 컨소시엄이었다.
검찰 발표에 대해 LIG D&A는 한국형 전자전기 사업과 뇌물은 연관성이 없다며 강하게 선을 그었다. LIG D&A는 입장문을 통해 "해당 공무원이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과제가 '전자전기 체계 개발'의 기반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실제로는 전자전기 사업의 핵심 기술 요소(CTE)와 연관성이 없다"며 "전자전기 사업 평가에는 해당 공무원이 평가위원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전자전기 사업은 공정한 평가 과정을 거쳐 큰 점수 차로 선정됐다"고 주장했다.
◇ 불법 인정 시 국내 신규 수주 사실상 전면 중단
만약 재판에서 뇌물과 수주의 연관성이 인정될 경우 LIG D&A는 국내 신규 사업 수주가 사실상 전면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이 청장은 "방위사업법에 따라 2년 간 입찰 참가 자격이 제한되고, 이후에도 3년 간 입찰 참가 과정에서 벌점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또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도 신뢰도가 하락해 해외 수출 길마저 좁아질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전자전기는 현대전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무기로 미국과 러시아 등 소수 국가만 보유한 핵심 항공 기술이다. 쉼 없이 달려야 2034년 개발이 완료되는데, LIG D&A와 계약이 무효화하면 전력화 시기가 끝없이 지연될 수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수원지법 형사11부(송병훈 부장판사)는 이달 29일 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