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뜨려도 괜찮으니 마음껏 돌려보세요."
로보티즈가 지난달 국내 로봇 업체로는 처음으로 자체 휴머노이드를 대학생들에게 맡기고, 오픈소스 기술로 원하는 로봇 동작을 직접 개발하게 하는 실험에 나섰다. 로보티즈는 가천대·연세대·서울대·서울과기대 로봇 동아리 4개 팀에 'AI 사피엔스'를 한 대씩 제공했다.
학생들은 공개된 구동·제어 코드와 AI(인공지능) 학습 환경을 활용해 새로운 로봇 동작을 만들었다. 방학 한 달간 매일 서울 강서구 마곡 로보티즈 본사로 출근해 로봇을 넘어뜨리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했다. 실험을 거듭하는 동안 액추에이터 2개가 고장 났고, 메인보드도 10여개를 갈아야 했다.
한 달간의 시행착오 끝에 지난달 31일 로보티즈 본사에서는 AI 사피엔스 4대가 저마다 다른 고난도 동작을 선보였다. 키 153㎝, 몸무게 34.8㎏인 로봇 한 대가 한 손을 바닥에 짚고 풍차돌리기를 하면, 다른 한 대는 엎드려 다섯 발짝을 포복한 뒤 다시 일어섰다. 태권도 발차기를 하고 K팝 아이돌 에이티즈의 '배드' 안무를 추는 로봇도 있었다. 회사가 미리 넣어둔 시연 동작이 아니라 모두 학생들이 새로 학습시킨 움직임이었다.
이번 실험은 로보티즈가 추진해 온 '오픈소스 휴머노이드' 전략의 첫 시험대다. 소스코드를 공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문 연구원이 아닌 대학생도 짧은 기간에 새 동작을 만들 수 있는지 실제 로봇으로 확인한 것이다. 로보티즈는 구동·제어 소스부터 가상공간에서 익힌 동작을 실제 로봇에 옮기는 개발 환경까지 열어두고 있다. 외부 개발자가 이 플랫폼 위에 새로운 AI와 동작을 계속 얹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학생들은 국산 휴머노이드를 써보니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속도부터 달랐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대학에서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고 양산 물량이 많은 유니트리 등 중국산 휴머노이드를 많이 활용한다. 이 경우 실험을 하다 부품이 고장 나면 새 부품을 받는 데만 2~3주가 걸려 실험이 지연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서울대 로봇 동아리 소속 정혜우(24)씨는 "학교에선 로봇 기체가 고장 날까 봐 안전줄에 매단 채 실험하고, 논문 제출 때 데모 영상이 필요하면 마지막에 한 번 정도 줄을 뗀다"며 "이번엔 부품을 바로 고칠 수 있으니 실패하고 고치는 과정을 더 많이 하면서 동작도 훨씬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상공간에서 만든 동작을 실제 로봇에 옮기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났다. 학생들은 중국산 기체는 세부 제어 정보가 제한적인 데다 하드웨어 오차도 큰 경우가 많아, 시뮬레이션에서 잘되던 동작이 실제 로봇에서는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서울과기대 로봇 동아리 소속 채승준(25)씨는 "중국 양산형 로봇은 액추에이터, 모터 등 부품 사용 정보가 정확히 공개되지 않아 시뮬레이션과 실제 로봇의 차이를 좁히기 힘들 때가 많다"며 "로보티즈 액추에이터는 제어 정밀도가 높아 가상에서 만든 동작을 실제 로봇에 옮기기가 훨씬 수월했다"고 말했다.
이날 대학생들의 발표를 들은 한 로보티즈 직원은 "학부생들이 한 달 만에 저런 동작을 구현해 놀랐다"며 "오히려 우리가 어떤 오류가 났고 어떻게 고쳤는지를 많이 물어봤다. 생태계가 왜 중요한지 직접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로보티즈의 오픈소스 전략에는 주력 부품인 액추에이터 '다이나믹셀'의 저변을 넓히려는 목적도 있다. AI 사피엔스의 23개 관절에는 모두 다이나믹셀이 들어간다. 개방된 플랫폼을 바탕으로 다이나믹셀 액추에이터를 활용하는 로봇 개발을 늘려, 핵심 구동 부품까지 생태계를 확장하겠다는 목표다.
로보티즈는 이달 'AI 사피엔스 K1'을 출시하고 내년부터 1000대 규모의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는 "오늘 학생들이 보여준 동작은 지난해 중국 로봇 대회에서 나온 수준과 비슷하다고 본다"며 "로봇에 카메라 등을 장착해 이런 실험을 더 하면 내년쯤에는 중국과 유사한 수준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혼자 개발하면 그 기술이 회사 안에서 끝나거나 숨어서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오픈 플랫폼에 여러 사람이 참여해 각자 기술을 얹고 발전시켜야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