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와 미래차 산업이 성장 정체(캐즘)를 지나는 가운데, 지역이 투자 유치 경쟁에서 앞서려면 부지와 보조금이 아닌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 세계 공급망이 재편되는 가운데, 산업 생태계의 빈 고리, 이른바 '미싱링크(missing link)'를 찾아 정부·기업·학계가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기업들은 데이터로 사업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경상북도가 8월 31일 서울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연 '2026 미래전략 산업혁신 투자포럼'에서는 '이차전지·미래차 공급망 재편과 경북의 투자 기회'를 주제로 패널 토론이 열렸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한국경영학회 회장)이 좌장을 맡았고, 박주영 포스코기술투자 책임심사역, 조경훈 프로텍벤처스 대표, 최익환 상하이메탈마켓(SMM) 한국지사장, 이우영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경상북도가 8월 31일 서울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개최한 '2026 미래전략 산업혁신 투자포럼'에서 전문가들이 '이차전지․미래차 공급망 재편과 경북의 투자 기회'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정연승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장이 좌장을 맡고 LB인베스트먼트, 포스코기술투자, 프로텍벤처스, 상하이메탈마켓(SMM), 연세대학교 등 산업·투자 전문가들이 참여해 공급망 변화와 투자전략을 논의했다. /정미하 기자

전문가들은 패널 토론에서 경북의 강점으로는 포항의 양극·음극 소재와 재활용·연구 기반, 경주의 자동차 부품·시험 평가, 구미의 전장·반도체를 광역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다만 거점이 분산돼 있고 대규모 셀·완성차 조립의 집적 생산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패널들은 개별 기업이 할 수 없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야말로 지방정부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 “필지 하나, 보조금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

정연승 원장은 "경북이 반도체·부품 기반 등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대규모 완성차 조립 거점과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면서 이차전지·미래차 공급망 재편에 관한 토론을 이끌었다.

정 원장은 토론의 전제를 "기업은 필지 하나, 보조금 여부 등이 아니라 생태계를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는 말로 정리했다. 전력·용수, 인허가, 지역 인재, 물류, 정주 여건이 한데 묶인 종합 생태계가 기업의 투자지 결정 기준이 됐다는 것이다.

조경훈 프로텍벤처스 대표는 "이차전지 업종이 주가 오버슈팅을 거치며 옥석이 가려진 만큼, 배터리와 미래차 두 산업의 병목을 동시에 해결하는 기업을 찾고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배터리관리시스템(BMS)·센서와 열 관리, 전력 반도체·전장, 제조·검사 장비, 재활용 공정 제어, 경량·고강도 부품처럼 기존 제조 역량을 미래차 요구 조건에 연결하는 분야가 대표적이다. 또 최근 로봇 쪽에서 새 수요가 나오고 있어 캐즘 극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조 대표는 "투자자들은 캐시카우와 양산·공정 노하우를 가진 회사를 선호한다"며 "기업 설명회(IR)에서는 '시장이 크다'는 설명보다 어떤 고객 문제를 해결하고 투자금으로 어떤 위험을 언제 제거할 것인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영 심사역은 "투자할 기업을 고를 때 개념검증(PoC)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매출은 나오는지, 인재 채용은 되고 있는지를 정량·정성 데이터로 종합해서 본다"면서 "기업은 기술소개서와 별도로 이런 항목을 표준화한 투자 데이터룸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심사역은 "투자 유치라는 사실보다 투자금으로 18~24개월 안에 어떤 고객검증과 수율·매출 목표를 달성할지 제시하는 기업, 가령, 프로젝트 일정표를 제시하는 기업들을 투자자들은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 “배터리 잘 만드는 지역에서, 가장 안전하게 쓰고 진단하는 지역으로”

이우영 연세대 교수는 경북이 '배터리 안전진단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배터리가 열 폭주 전에 내뿜는 수소 등 미량 가스를 감지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찾아내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사람의 호흡으로 건강을 진단하듯 '배터리의 숨'을 읽는다는 뜻에서 '배터리 브레소믹스(Battery Breathomics)'라고 부른다.

그는 "센서는 '피지컬 AI'의 오감에 해당한다"며 "경북은 배터리를 많이 만드는 지역을 넘어 배터리를 가장 안전하게 사용하고 진단하고 재활용하는 지역으로 간다면 이차전지의 캐즘을 넘어설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희토류 영구 자석과 고성능 모터도 경북의 차세대 전략 산업으로 지목했다. 네오디뮴(NdFeB) 영구 자석은 전기차 구동 모터의 출력 밀도와 효율을 결정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에서는 관절 액추에이터의 크기·무게·토크를 좌우하는 핵심 소재인데 공급망의 중국 집중도가 매우 높다.

그는 "희토류 광물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원료–합금–자석–모터–인버터–액추에이터까지 연결되는 공급망을 국내에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최익환 SMM 한국지사장은 향후 3년간 공급망을 좌우할 선행 지표로 '정책'을 꼽았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동성에 더해 짐바브웨처럼 핵심 광물을 보유한 국가들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각국의 세제, 생산·수출 정책, 쿼터, 조달 정책이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면서 "향후 3년은 정책과 원자재 리스크에 대응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밸류체인 안전성을 높여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최 지사장은 경북이 공급망의 '실행 거점' 역할을 하려면 기술 변화 속에서 비어 있는 부분, 즉 미싱링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업계가 4세대, 5세대로 가는 등 원료와 공정 공급망이 바뀌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중국은 학계·정계·기업이 동시에 움직이는데, 순차적으로 검토해 투자를 결정할 때쯤이면 이미 늦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공공이 공동 장비와 초기 실증 위험을 분담하고 민간은 경제성과 성장성을 판단하며, 양산 단계에서는 정책 금융·전략적 투자·민간 투자가 함께 들어오는 구조를 정책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면서 "특히, 지역 앵커 기업이 '큰형님'으로서 스타트업의 양산 제품에 대한 첫 검증 고객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포스코퓨처엠이 포항 중심의 이차전지 밸류체인 구축과 대규모 투자 사례를, 일지테크가 경주 자동차 부품 거점 투자와 재투자 경험을 소개했다.

경북도와 포항시·경주시는 산업단지와 가용 부지, 전력·용수 등 기반 시설, 투자 인센티브를 설명했고 에이엔폴리, 암페어머티리얼즈, 투디엠, 배건하이테크, 에스피씨아이 등 지역 유망 기업이 투자 설명에 나섰다.

이번 포럼은 지난해 APEC 정상회의 성과를 지역 투자로 잇기 위한 '포스트 APEC 경북 투자 포럼'의 첫 본행사로, 국내외 기업과 투자 기관, 산업 전문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