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하며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리밸런싱)에 속도를 내면서, SKC의 화학 사업 자회사인 SK피아이씨글로벌의 앞날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SK피아이씨글로벌의 매각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체 자금 조달마저 한계에 부딪히자, 결국 모회사에 흡수된 SK어드밴스드나 SKIET와 같은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7일 화학 업계에 따르면 SKC는 최근 SK피아이씨글로벌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업황 악화로 인수할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다. SKC 관계자는 다만 "SK피아이씨글로벌의 매각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SK피아이씨글로벌은 지난 2020년 SKC가 화학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한 뒤 쿠웨이트 국영 석유화학 기업 PIC와 합작해 설립한 화학 원료(PO·PG) 제조 기업이다. 현재 SKC가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SK피아이씨글로벌의 현 상황은 이달 들어 모회사인 SK가스에 흡수 합병된 SK어드밴스드, SK이노베이션에 합쳐진 SKIET와 비슷하다. 세 회사 모두 최근 수 년 간 실적 부진을 겪었고, 매각 작업도 표류해 왔다.
SK피아이씨글로벌은 중국의 프로필렌옥사이드(PO)·프로필렌글리콜(PG) 과잉 공급으로 저가 물량이 쏟아지면서 2022년 3분기에 영업 손실을 낸 후 지난해까지 적자가 지속돼 왔다.
올해 1분기에는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주요 제품의 판매 단가 상승으로 '반짝' 영업이익을 냈지만, 향후 '역(逆)래깅(유가가 하락 안정될 경우 과거 비싸게 사온 원유로 만든 석유 제품을 싸게 파는 것)'이 발생해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외부에서의 자금 조달도 사실상 막힌 상태다. SK피아이씨글로벌은 지난해 11월 1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한 뒤 자금을 조달하지 못했다. 당시 표면 금리는 5.1%, 만기는 1년 6개월이었다. 현재 SK피아이씨글로벌의 신용 등급은 A-, 등급 전망은 '부정적'이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자금 조달 여건이 더 나빠질 수 있다.
장기간 손실이 누적되면 모회사인 SKC는 물론 SK그룹 전체의 연쇄적인 신용 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6일 SK가스가 합작사 지분을 모두 사들여 SK어드밴스드를 100% 자회사로 전환한 것도 이 같은 '신용 위험 전이'를 막기 위해서였다. SK이노베이션도 사업, 재무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SKIET에 대한 흡수 합병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SKC는 SK피아이씨글로벌의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현금을 지속 투입하고 있다. 올해도 주주 간 계약에 따라 손해배상금으로 1000억원을 집행할 예정이다. SKC는 지난 2020년 PIC에 지분 49%를 매각할 당시 향후 5년 간 영업이익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배상을 하기로 계약한 바 있다. 이에 따라 SKC 역시 재무 부담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SKC가 2년 간 지급한 손해배상금은 SK피아이씨글로벌의 몸값과 비슷한 수준이다. SK피아이씨글로벌의 장부상 가치는 1233억원인데, 이 중 SKC의 보유 지분은 629억원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하면 SK피아이씨글로벌의 매각 가격은 2000억원 이하로 추산된다.
SKC가 SK피아이씨글로벌을 흡수 합병할 정도의 체력을 갖추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의문 부호가 나오고 있다. SKC는 2023년 영업 손실을 낸 후 적자가 지속 중이다. 자산 매각 시도, 유상증자 등으로 운영 자금을 확보하고 있지만, 재무 구조 개선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많다. 다만 SKC의 2분기 연결 기준 부채 비율은 157%로 1분기(236%)에 비해서는 하락한 상태다.
최근 SKC는 반도체 글라스 기판을 만드는 자회사 앱솔릭스, 이차전지용 동박 제조사인 SK넥실리스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SKC는 지난 5월 유상증자로 확보한 1조2000억원 중 절반가량을 앱솔릭스에 투입하기로 했다. SK넥실리스 역시 최근 전기차 시장이 점차 살아나고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수요가 늘고 있어 매각 대상에서 제외됐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현재 업황과 실적 등을 보면 SKC가 SK피아이씨글로벌을 높은 가격에 팔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PIC의 지분을 매입해 완전 자회사로 만든 후 합병하거나, 일부 알짜 자산만 쪼개 파는 방식 등의 선택지만 남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