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현지시각) 한국 정반대에 있는 아르헨티나 살타주. 경비행기로 35분을 날아 해발 4000m 안데스 고지에 오르자, 화성 같은 황갈색 땅 한가운데 에메랄드빛 폰드(인공 증발 연못)가 오아시스처럼 반짝였다. 땅속에서 퍼 올린 리튬 염수를 태양과 바람에 졸이는 거대한 '리튬 염전'이다.
폰드 너머엔 공장과 LNG 발전소, 전봇대 400여개가 늘어서 있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멍해졌다. 산소가 부족해 나타난 현상이다. 칼바람 부는 이런 고지대에서 포스코아르헨티나 직원 약 320명은 1~2주 간격으로 교대하며 '리튬 생산기지'를 꾸려가고 있었다. 국내 기업이 해외 염호에서 리튬을 직접 생산하는 건 포스코홀딩스가 처음이다.
이곳에 4년째 상주 중인 한 주재원은 "1970년대 포항 모래벌판에 제철소를 짓듯,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고지대에서 '무에서 유'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소가 평지의 60%밖에 안 돼 여전히 잠자기가 힘들지만,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하겠느냐는 사명감으로 1공장을 완성했고 2공장 생산 시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고 했다.
초반엔 공장을 돌릴 물과 전기도 없어 34㎞ 밖에서 관로로 담수를 끌어오고 자체 발전소를 세웠다고 한다. 기자재는 트럭으로 7시간씩 산을 올라 날랐고, 숙소와 식당·의료시설도 함께 지었다.
◇서울 절반 규모 광권에 리튬 1500만t… 4개월 졸여 배터리 원료로
나무 한 그루 없는 이곳은 스페인어로 '죽은 남자'라 불린 '옴브레 무에르토(Hombre Muerto)' 염호 일대다. 겉보기엔 메마른 황무지지만, 땅 밑엔 '하얀 석유'라 불리는 리튬이 녹아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2018년에 이어 올해 잇달아 이 염호 광권을 인수해 총 287㎢를 확보했다. 서울시 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크기로, 지하 염수엔 전기차 약 7000만대분의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리튬 1500만t(톤)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약 23억달러(약 3조1700억원)를 투입한 이른바 '황금 소금' 프로젝트. 중국 의존도가 높은 리튬 공급망에서 원료부터 직접 확보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런 오지에 굳이 깃발을 꽂은 건 리튬 농도 때문이다. 이곳 염수엔 리터(ℓ)당 리튬이 평균 921㎎ 녹아 있다. 칠레 아타카마 염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짙다. 같은 양의 리튬을 만들 때 농도가 높을수록 퍼 올리고 말리고 정제해야 할 염수가 줄어든다. 농도가 곧 원가인 셈이다.
실제 포스코아르헨티나 제조원가에서 원료 비중은 1%가 채 안 된다. 전 세계 리튬의 43% 이상이 아르헨티나·칠레·볼리비아 접경에 몰려 있어 중국 업체들도 이 일대 광권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리튬 농도가 높은 염호를 손에 넣은 뒤에도 상업생산까지는 도전과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염수에는 바닷물의 약 8배에 달하는 염류가 녹아 있는데, 리튬은 ℓ당 1g도 안 된다. 폰드에 손끝을 찍어 맛보니 혀가 아릴 만큼 짰다.
리튬 생산은 이 '소금 범벅'에서 농도 높은 염수를 찾아 끌어올리는 데서 시작한다. 지질 조사로 농도가 높은 곳을 찾아 지하 450m까지 관정을 뚫어 염수를 뽑아 올린다. 이를 논두렁처럼 칸칸이 나뉜 폰드에 30㎝ 높이로 얕게 펼친다. 넉 달간 염수가 여러 칸을 차례로 지나며 물이 증발하면 리튬 농도는 다섯 배 가까이 짙어진다.
겨울은 또 다른 고비였다. 겨울엔 하루 증발량이 여름의 절반으로 줄고, 시속 100㎞ 넘는 강풍이 부는 날에는 조업이 아예 멈춘다. 이들은 겨울철 농축 속도 저하에 대비해 기존 3개 생산 라인 옆에 네 번째 예비 라인을 추가하고 있었다.
이세진 포스코아르헨티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자연에 순응해야 하는 사업"이라며 "10년 빈도의 홍수까지 내다보고 폰드를 설계했지만, 예상 밖의 비가 오면 염수가 묽어져 하늘만 봐도 마음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졸인 염수에는 포스코홀딩스가 자체 개발한 공정을 적용한다. 불순물을 하나씩 제거하면 리튬도 함께 손실된다. 그래서 인산을 넣어 리튬만 콕 집어 밀가루처럼 고운 하얀 인산리튬 가루로 먼저 만든다.
이 가루를 트럭에 싣고 약 8시간을 내려가 해발 1200m 안팎의 구에메스 하공정에서 다시 녹여 고순도 정제와 전기투석(BPED) 등을 거치면 고성능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수산화리튬이 완성된다.
이 공정들을 현지 염수 특성에 맞춰 하나로 연결하고 수율을 최적화해 개발 당시 1년 넘게 걸리던 생산 기간은 3분의 1로 줄었다. 박현 포스코아르헨티나 법인장은 "상용화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던 이 공정을 이제 중국 업체들도 따라 한다"고 말했다. 24시간 돌아가는 구에메스 공장의 출하장엔 450㎏씩 진공 포장한 수산화리튬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옮겨져 배로 한국과 유럽 등에 보내질 물량이다.
◇8년 만의 첫 흑자, 다음 목표는 리튬 연 10만t 생산
8년간의 고군분투 끝에 포스코아르헨티나는 지난 2분기 처음으로 영업이익 110억원의 분기 흑자를 냈다. 생산량이 늘어난 데다 작년 7월 t당 8000달러 선까지 떨어졌던 수산화리튬 가격이 최근 1만8000달러대로 회복한 영향이다.
당시 가격 급락은 후속 투자 속도를 늦출 만큼 사업 수익성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박 법인장은 "글로벌 기관들은 앞으로 리튬값이 t당 1만5000~2만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광을 사서 쓰는 업체와 달리 염수 자원을 직접 확보한 우리는 그 가격대면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포스코홀딩스는 t당 2만달러가 유지되면 2028년 영업이익률이 41%, 1만5000달러면 22%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생산이 늘면서 판로도 넓어지고 있다. 포스코아르헨티나는 올해부터 3년간 SK온에 리튬 최대 2만5000t을 공급하기로 했다. 올해 생산량 1만7000t 중 절반 이상은 이미 판매처가 정해졌다. 다음 목표는 아르헨티나 연 10만t 생산 체제다. 1·2공장이 고급 전기차용 삼원계(NCM) 배터리에 쓰이는 수산화리튬을 연 2만5000t씩 만들고, 2030년과 2033년 차례로 준공되는 3·4공장이 탄산리튬을 2만5000t씩 보탠다.
탄산리튬으로는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ESS(에너지저장장치)와 중저가 전기차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수요까지 잡겠다는 전략이다. 아르헨티나산 리튬을 고객사에 직접 팔거나 포스코퓨처엠의 양극재 원료로 넣어, 원료부터 소재까지 이어지는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매년 리튬 10만t을 꾸준히 생산하려면 생산 시스템을 현지에 뿌리내리는 일도 필수다. 포스코아르헨티나 임직원 623명 가운데 한국인 주재원은 63명뿐. 현지 직원 560명을 상대로 주재원들은 관리자급과 엔지니어를 키우고 자체 테크센터를 열어 용접·배관·전기 등 현장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고지대에서 만난 현지 직원 파쿤도 발데라마씨는 "포스코 리튬 사업 덕분에 나 같은 동네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었고, 납품하는 주변 기업들이 크면서 마을 전체가 살아나고 있다"며 "한국에서 온 동료들과 일하며 새 기술과 문화를 배우는 게 즐겁고 감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