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에서 한국과 해외 업체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독일 라인메탈은 수주 잔고가 1년 만에 2배 수준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미국 록히드마틴은 올 들어 2분기 누적 수주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국내 방산업체들은 성장세가 한풀 꺾인 상황이다.

라인메탈이 개발 중인 KF51 전차. /라인메탈 홈페이지 캡쳐

24일 각 사가 공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방산업체들의 최대 경쟁사로 꼽히는 라인메탈의 올해 상반기 수주 잔고는 805억유로(약 131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4%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대 수준에 해당된다.

라인메탈의 아르민 파페르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일 가진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수주 잔고가 최대 1200억유로(약 194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수주 잔고 638억유로(약 106조원)와 비교해 2배 가까운 수준으로 급증할 것이라 내다본 것이다.

라인메탈의 수주가 크게 증가한 것은 최근 2년 여에 걸친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 수혜를 누렸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들은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155㎜ 포탄과 전차 포탄, 대공 미사일 재고가 부족해져 방어용 무기 확보를 위해 국방 예산을 대폭 늘렸다. 이에 라인메탈은 무기·탄약 사업부의 수주 잔고만 250억유로(약 42조원)를 넘어섰다.

수주는 올해도 이어졌다. 라인메탈은 올해 초 덴마크와 루마니아, 폴란드, 우크라이나와 포탄 공급 계약을 맺었다. 지난달에는 영국 육군의 자주포 사업을 따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경쟁했던 루마니아 장갑차 사업과 독일 보병전투차량 사업에서도 승리했다. 차량 시스템 부문의 상반기 수주 잔고는 288억유로(약 48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41% 늘었다.

라인메탈은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최근 독일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헝가리,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등에서 공장을 신설하거나 확장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탄약업체 엑스팔을 인수했다. 2027년까지 연간 155㎜ 포탄 150만발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라인메탈이 함정 전문 조선소인 저먼 네이벌 야드 킬(GNYK)까지 인수하며 사세를 무섭게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주 잔고가 크게 늘어난 곳은 라인메탈 뿐이 아니다. 글로벌 1위 방산업체인 미국의 록히드마틴은 올해 2분기에 사상 최대치인 2304억달러(약326조원)의 수주 잔고를 기록했다. JP모건은 록히드마틴의 수주 잔고가 지난해 1940억달러(약 275조원)에서 올해는 2400억달러(34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프랑스의 방산·항공 전자 기업인 탈레스도 수주 잔고가 지난해 453억유로(약 74조원)에서 올해는 500억유로(약 82조원)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에어로와 미 육군의 차세대 자주포 사업을 두고 맞붙었던 미국의 제너럴 다이내믹스도 같은 기간 수주 잔고가 1034억달러(약 145조)에서 1420억달러(198조원)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르웨이로 수출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자주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반면 한국 방산 기업들의 수주 증가세는 주춤한 상황이다. 6월 기준 한화에어로 방산 부문의 수주 잔고는 약 38조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37조원보다 소폭 늘었고, 전년 동기 대비 7조원 증가했다. 한화시스템 방산 부문의 수주 잔고 8조5000억원을 더해도 라인메탈 차량 시스템 부문 한 곳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하다.

현대로템 방산 부문의 수주 잔고는 지난해 말 10조1000억원에서 올 상반기에는 9조9000억원으로 2.1% 줄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국내 방산과 완제기 수주 잔고는 16조5000억원에서 15조2612억원으로 감소했다.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LIG D&A)도 25조3000억원에서 24조5000억원으로 줄었다.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늘었지만, 올해 들어선 뒷걸음질한 수치다. 이를 두고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기존 계약분 납품은 이뤄졌지만, 신규 계약이 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국내 방산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수주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 재래식 무기체계부터 위성과 항공기 등 첨단 장비까지 한 번에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다. 수주전 양상도 자주포와 전차, 항공 무기, 레이더 시스템을 묶어 제안하는 '패키지 딜'로 바뀌었다.

한화에어로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인수한 데 이어 풍산과 KAI 인수를 추진 중이다. 유럽 뿐만 아니라 북미 등에서 현지 기업에 대응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다.

특히 유럽과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는 공동 개발도 수주를 늘릴 수 있는 방책으로 꼽힌다. 현지 기업으로 간주돼 공급망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LIG D&A는 라인메탈과 방공망 공동개발 업무협약을 맺었고, 다른 기업들도 현지 업체와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7월 튀르키예에서 열린 나토 방산포럼에서 "무기체계를 함께 연구하고 생산·운용하는 '한·나토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으로 협력을 격상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완제품을 유럽에 파는 기존 방식으로는 현지 시장을 뚫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며 "현지 기업과 손잡고 유럽 공급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수주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는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나토 무기체계와의 상호 운용성 등 한국 방산이 가진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