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주요 방위산업체로부터 드론 등 무인 무기 체계용 배터리를 공급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에 대해 검토 중이다. 전기차 시장 부진으로 LG에너지솔루션의 사업 영역이 전기차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넓어진 가운데 방산 분야까지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LG그룹은 종합 방위 업체인 LIG넥스원이 속한 LIG그룹과 계열 분리를 한 이후 방위산업 관련 사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미국 방위산업체와의 협력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21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밥 리(이혁재) LG에너지솔루션 북미 총괄은 블룸버그가 19일(현지 시각) 보도한 인터뷰에서 "복수의 미국 업체로부터 방산 분야 협력에 관한 문의를 받았다"며 "이 부분(방산 분야 협력)을 어떻게 할지 매우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와 주요 방위산업체가 LG에너지솔루션 외의 배터리 기업과도 방산 분야 협력을 논의 중일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시장에선 LG그룹 내부에서 방산 분야 협력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를 큰 변화로 여긴다. LG그룹은 방산 산업과 거리두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과거 LG그룹 산하에는 방산업과 관련된 LG정밀이 존재했다.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 시절이던 2000년, LG정밀은 LG이노텍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이후 LG그룹에서 LIG그룹이 계열 분리되는 과정에서 LG이노텍의 방산 사업부는 2004년 분사해 현재의 LIG넥스원이 됐다.
LG그룹은 LIG그룹, GS그룹과 계열 분리를 한 이후 암묵적으로 사업 영역을 겹치지 않도록 유지해왔다. 이 총괄은 인터뷰에서 "소비재 기업들이 '술이나 담배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 것과 유사하게 LG 역시 방산 부문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고 했다.
또한 LG에너지솔루션이 방산 분야에 배터리를 공급하면 당장 실적에는 도움받을 수 있지만, LG그룹이 글로벌 ESG 평가기관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등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기에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 미·중 갈등이 심화한 상황이라 미국 방산 산업에 진입할 경우 LG그룹 계열사가 중국 등지에서 사업을 할 때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배터리 사업만 놓고 보면 방산 분야에는 사업 기회가 충분하다. 방산 분야 배터리는 전파 방해 장치부터 무인 항공기, 무인 지상 차량과 같은 무인 시스템의 확산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
글로벌 시장 분석기업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군용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5년 24억달러에서 2026년 25억7000만달러, 2034년에는 52억2000만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올해부터 2034년까지 연평균 성장률만 9.3%에 이른다. 이 중 북미 지역 시장점유율은 36.25%로 군용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가 신형 무기에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하면서 한국 기업이 제조하는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전쟁부(국방부)는 2023년 제정된 국방수권법에 따라 2027년 10월부터 CATL, BYD 등 중국 6개 업체로부터 배터리를 조달하는 것을 금지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결정만 한다면 드론용 배터리는 지금도 공급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3월 '인터배터리 2026'에서 자사의 2170 원통형 배터리(지름 21mm, 높이 70mm 규격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혈액 수송용 드론을 선보인 바 있다.
2170 원통형 배터리는 표준화된 규격이라 수급이 쉽고 알루미늄 캔으로 마감돼 있어 군사용 드론, 무인항공기는 물론 무인 지상차량, 감시정찰용 로봇 등에 쓸 수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를 대체할 곳은 사실상 한국 기업 뿐이기에 미국 정부가 접촉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한국 배터리 기업으로선 방산이라는 특성 자체가 시장에 진입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요소"라고 말했다.